내용
세운상가 일대 식당은 점심 메뉴에 따라 크게 2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닭 한 마리, 냉면, 갈비, 삼겹살, 곱창, 낙지전골 등과 같이 한 가지 특화된 메뉴를 중심으로 하는 식당과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중 갈비와 삼겹살 등의 고기류를 판매하는 식당들은 찌개류와 육개장, 비빔밥, 불고기, 추어탕, 갈비탕 등의 점심 메뉴를 추가하여 손님을 받고 있다.
‘백반’은 이 지역 상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다. 백반 식당은 지정된 대표반찬에 곁들이는 국과 반찬이 자주 바뀌는 메뉴를 제공하는데, 김치찌개 백반, 순두부 백반, 청국장 백반이라 해서 찌개를 지정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또한 생선구이 백반, 돼지불고기 백반 등 아예 반찬을 지정하는 경우에는 가격이 조금 더 올라간다. 백반 식당이 몰려 있는 곳은 세운전자상가 서쪽 지역인 장사동 먹자골목이다. 세운상가 점포와 장사동 기계공구상가에는 종업원 없이 홀로 운영하는 사장들이 많다. 사장님들은 점심시간(12~2시) 동안 가게를 비우기가 힘들어 대부분이 장사동 먹자골목의 식당에서 백반류를 배달시켜 먹는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쟁반을 머리에 이고 세운상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은 장사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입정동과 산림동의 기계제조 공장의 기술자들은 점심시간에 공장을 비우고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다.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발주가 들어오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손님이 찾아올 염려가 없어 점심시간 동안은 공장을 비워두고 친한 동료들과 인근 식당 또는 조금 떨어진 광장시장까지 나가 식사를 한다. 세운상가나 장사동 상인들과 달리 공장을 비울 수 있기 때문에 매일 다양한 음식을 찾는다. 어제 을지로 3가 A식당에서 육개장을 먹었다면, 오늘은 인근 B식당에서 ‘닭 한 마리’를 먹는 식이다. 보통 오전 7시부터 점심시간까지 고된 노동이 계속됨으로 점심식사를 하나의 휴식시간으로 여긴다. 따라서 술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음식을 찾는다. 까다로운 기술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식당들은 고정 메뉴 외에도 새로운 메뉴를 매일 제공해야 한다. 공장과 가까운 식당일 수록 저렴한 값의 일일 메뉴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