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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정문 : 폐쇄된 성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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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2023-04-25 ~ 2023-09-10
    숙정문(肅靖門)은 조선 초 한양도성의 북문(北門)으로 건설되었으나, 항상 닫아두었던 까닭에 실제 성문의 역할은 하지 못했던 문입니다. 그러나 나라에 가뭄이 심하거나 장마가 지속될 때, 옛 조상들이 찾았던 풍수적 해법에는 항상 숙정문이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수도 성곽의 성문으로 조성되었으나 정작 출입 기능은 하지 못했던 숙정문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닫혔다가 이제 한양도성을 순성(巡城)하려 백악 구간을 오르는 누구에게나 열린 숙정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그날, 혜화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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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2022-11-15 ~ 2023-03-12
    2022년 한양도성박물관 하반기 기획전 그날, 혜화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창경궁로를 따라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성대입구역 쪽으로 걷다 보면 도로 옆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의 여덟 성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惠化門)입니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렸던 이 문은 조선 시대 도성의 동북쪽 출입을 관장하였습니다. 강원도, 함경도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 여진(女眞)의 사신(使臣)들도 이 문을 통해 드나들었습니다. 또한 풍수적 이유로 폐쇄되었던 숙정문(肅靖門)을 대신하여 사실상 북문(北門)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혜화문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수도 한양의 출입구를 지키고 방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사고를 통해 옛 혜화문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 守衛都城 - 도성을 지키는 성, 탕춘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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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2022-04-26 ~ 2022-09-18
    창의문(彰義門) 밖, 한양도성의 서북쪽에는 탕춘대성(蕩春臺城)이라 불리는 성곽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도성의 외곽 북쪽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조한 후 북한산성과 한양도성 사이에 쌓은 성으로, 과거 연융대성(鍊戎臺城) 혹은 서성(西城)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탕춘대성의 건설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견고한 수비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도성 방어를 강화하는 수도방위체계를 완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1920년대 초의 홍수로 성곽 일부가 소실·훼손되었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채 방치되었습니다. 1970년대 보수·복원 공사가 추진되었으나, 성문과 수문을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어 상대적으로 성벽은 훼손된 채 남아있는 구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탕춘대성은 지형의 능선을 따라 쌓은 축성 당시의 원형이 대체로 잘 남아 있어 지형과 지세를 활용한 우리나라 성곽 축성의 전통을 잘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과거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가 담긴 탕춘대성의 기능과 가치, 그리고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통해 조선의 수도방위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 도성의 서쪽 문, 헐값에 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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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2021-11-09 ~ 2022-03-06
    2021년 한양도성박물관 하반기 기획전 도성의 서쪽 문, 헐값에 팔리다 2021. 11. 9(화) ~ 2022. 3. 6(일) 한양도성박물관 기획전시실   1915년 3월 ‘서대문의 낙찰, 205원(西大門의 落札, 二百五圓)’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실렸습니다. 오늘날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돈의문(敦義門)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서쪽을 지키던 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고, 서쪽 지방으로 향하는 왕의 행렬이 출입하던 중요한 문이었습니다. 풍수적 논리와 궁궐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폐쇄되기도 했지만, 근대기 전차의 등장에도 꿋꿋이 도성의 성문으로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도시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어, 도로 확장과 교통 편의를 목적으로 철거되었습니다. 성문이 본래의 역할을 잃고 사라졌다는 것은 수세기동안 유지되었던 중세도시 한양의 체제가 해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돈의문의 철거는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식민도시 경성(京城)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라진 성문, 돈의문을 통해 근대 한양도성 해체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각자성석, 돌에 새긴 축성의 기록
    각자성석, 돌에 새긴 축성의 기록 관련이미지
    전시기간
    2021-04-13 ~ 2021-09-26
    한양도성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글자가 새겨진 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 불리는 이 돌들은 한양도성 축성의 역사가 담긴 흔적들입니다. 현재까지 한양도성 전 구간에 걸쳐 288개의 각자성석이 발견되었으며(2015년 기준), 성벽을 쌓은 시기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또한 돌에 새겨진 기록은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문헌기록과 그 내용이 일치하여 한양도성의 구간별 축성 시기뿐만 아니라 도성 관리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 시리즈의 다섯 번째 전시는 한양도성의 구간별 각자성석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한양도성 축성과 관리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성돌에 새겨진 옛 선조들의 흔적을 통해 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관련이미지
    전시기간
    2020-12-15 ~ 2021-03-07
    광희문(光熙門)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을 지키던 문으로, 숭례문(崇禮門)과 흥인지문(興仁之門) 사이에 건설되어 조선시대 도성의 동쪽 밖으로 드나들던 백성들의 주된 출입구였습니다. 백성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문이었기 때문에 한양도성의 다른 어떤 문보다 많은 별칭으로 불렸던 문이기도 합니다. ‘빛이 멀리까지 사방을 밝힌다(光明遠熙)’는 의미로 광희문이라 명명하였으나 수구문(水口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렸고, 구한말에는 ‘시체를 옮기는 입구(屍口門)’라는 험악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차례 훼철의 위기를 넘기며 버텨온 광희문에는 문의 여러 이름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각의 이름에 얽힌 광희문의 특징과 역할,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도성의 동남쪽 작은 문(小門), 광희문의 역사와 변화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한양도성의 어제와 오늘
    한양도성의 어제와 오늘  관련이미지
    전시기간
    2020-05-19 ~ 2020-11-15
    1975년 한양도성 보수·복원사업의 첫 삽을 뜬 이래, 한양도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고, 훼철 혹은 소실되었던 성문이 복원되었으며, 땅 속에 묻혔던 구간이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 시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존재하고 있는 한양도성이지만, 항상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 아닌 까닭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는 한양도성의 가까운 과거를 현재의 모습에 비추어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 속에 기록된 1960~70년대 한양도성이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함으로써 한양도성 보수·복원의 성과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겸재가 그린 창의문
    겸재가 그린 창의문 관련이미지
    전시기간
    2019-09-10 ~ 2019-12-15
    한양도성의 서북쪽에 세워진 창의문(彰義門)은 백악과 인왕산 사이 고갯마루를 지키는 문입니다. 숙정문(肅靖門)이 늘 닫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도성의 북쪽 출입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영조 17년(1741)에 중건된 이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숭례문(崇禮門)이 화재로 복원된 현재, 가장 오래된 도성 문루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도성 안에서 창의문을 바라보는 구도로 시차를 두고 두 점의 〈창의문도(彰義門圖)〉를 그렸습니다. 이 두 그림 안에는 백악과 인왕산 기슭의 장동(壯洞)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화가의 시선과 창의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정선의 〈창의문도〉를 통해 조선시대 창의문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Ⅲ '성문개폐'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Ⅲ '성문개폐' 관련이미지
    전시기간
    2019-03-26 ~ 2019-06-23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여덟 성문은 성 안팎의 사람과 물자가 출입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한양과 지방을 잇는 주요 도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성문이 닫히면 다음날 다시 열릴 때까지 도성 안에서의 모든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도성민의 하루는 성문의 개폐시간에 맞춰 시작되었다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 시리즈의 세 번째 전시는 조선시대 다양한 기록 자료에 등장하는 성문개폐 관련 일화를 소개합니다. 성문개폐가 도성 방어 및 주민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던 만큼 성문은 철저한 규칙에 따라 관리·운영되었습니다. 각 문에서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한양도성의 성문 관리 체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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