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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실 1 - 서울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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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인구 1천만 명, 면적 605㎢의 거대도시 서울은 매일매일 변화하는 새로움의 연속체이다. 해가 뜨고 서울의 하루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도시는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서울의 전부는 아니다. 서울은  600년 두터운 과거가 오늘의 일상과 함께 공존하는 역사문화도시로서, 오래도록 도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 온 한양도성이 이를 증명한다.

    1396년 조선의 수도 서울(한양)에 건설된 한양도성은 도시의 경계이자 도성민의 삶을 지키던 울타리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도성의 기능은 없어지고 망각 속에서 제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채 우리 곁에서 멀어졌지만 한양도성은 여전히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과 복원을 통해 현대에 되살아나고 있는 한양도성은 사계절과 밤낮의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도 도성 안 서울 사람들을 품고 있다.

상설전시실 2 - 한양도성의 건설과 관리

  • 한양도성의 건설

    도성은 그 위치, 규모, 형상, 격식 등을 통해 한 나라의 위상과 통치 이념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구조물의 집적체이다. 모든 정령(政令)은 도성 안에서 나오며, 중요한 국가 의례는 모두 도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뛰어난 인재(人材)와 물자는 도성으로 모여든다. 1392년에 개창된 조선왕조가 새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 고려의 남경(南京)이었으나 성벽조차 없던 곳이었다. 조선왕조는 이 땅의 자연 형상을 따라 성벽을 쌓고 유교적 이상도시론에 맞추어 내부 공간을 채웠다. 도성 안의 도로는 성문을 통해 전국으로 이어졌으며, 도성 남쪽에서 동서로 흐르는 한강은 물자 수송로로 이용되었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중엽,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도성이 함락되고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성벽이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성문이 퇴락하면 고쳐 지으면서 도성의 기본 구조는 조선왕조 500여 년 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 도성의 관리와 생활

    도성은 왕의 존엄과 나라의 권위를 표상하고 수호하는 시설로서 그에 걸맞은 권위를 지녀야 했다. 세종 대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성벽을 따라 안팎으로 순심로(巡審路)를 내었는데, 군사들이 매일 이 길을 다니며 이상 유무를 관찰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담당 관서에 알려 보수하게 했다. 왕과 외국 사신들이 자주 드나드는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특히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었으며, 문루는 화재 감시용 망루 역할도 했다. 도성은 서울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직접 강력히 규제했을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백성에게도 상징적, 실체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울 주민들은 도성 문이 여닫히는 시각에 따라 일상생활을 영위했으며, 매일 성벽을 보고 살았다. 영조 대 ‘수성절목(守城節目)’이 제정된 이후에는 모든 도성민에게 유사시 달려가 지켜야 할 성벽 구간이 할당되었다. 지방에서 상경上京하는 사람들은 성벽과 성문을 보고 서울을 인지했다.

상설전시실 3 - 한양도성의 훼손과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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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도성의 훼손

    오래된 성곽 도시들에게 근대화란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 공간이 성벽 밖으로 팽창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하여 도로가 신설·확장되며, 신무기 개발로 인해 성벽의 군사적 가치가 감소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의 성벽이 근대화 과정에서 헐렸고 한양도성 역시 근대 도시 성곽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서울의 근대 도시화는 외세의 침탈과 맞물려 있었다. 한국을 강점한 일본은 평지의 성벽을 조직적으로 허물었으며, 수백 년 간 서울의 상징 구실을 한 성문들을 철거하거나 방치하였다. 일본 신토(神道) 사원인 조선신궁을 건립하면서 남산 일원의 성곽을 훼손했고, 경성운동장을 지으면서 동대문 주변의 성곽을 무너뜨렸다. 한양도성은 존엄한 땅을 표상하는 상징물에서 망국의 아픔을 드러내는 폐허로 바뀌었다.

  • 한양도성, 소생하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는 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담을 수 없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성벽이 도시 발전을 방해하는 낡은 시대의 잔재로 인식된 것은 보편적인 시대 현상이었다. 전 세계 역사도시들의 성벽이 헐렸고 한양도성 역시 중세 성곽의 숙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평지에 건설된 다른 수도 성곽들과는 달리, 한양도성은 자연과 한 몸으로 축조되었기에 많은 부분이 온존될 수 있었다. 질풍노도와 같은 근대화의 시기를 지난 이후, 민족적 전통이 담긴 이전 시대의 유물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양도성 역시 한국과 서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념비적 유산으로 재발견되어,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담은 구조물로 소생했다. 원 모습대로 복원하겠다는 서툰 태도가 오히려 진정성을 훼손한 사례가 적지 않았으나, 한양도성은 그 상처마저도 미래 세대에 전승할 교훈으로 품은 채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새 시대의 표상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