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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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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15 ~ 2021-03-07
광희문(光熙門)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을 지키던 문으로, 숭례문(崇禮門)과 흥인지문(興仁之門) 사이에 건설되어 조선시대 도성의 동쪽 밖으로 드나들던 백성들의 주된 출입구였습니다. 백성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문이었기 때문에 한양도성의 다른 어떤 문보다 많은 별칭으로 불렸던 문이기도 합니다. ‘빛이 멀리까지 사방을 밝힌다(光明遠熙)’는 의미로 광희문이라 명명하였으나 수구문(水口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렸고, 구한말에는 ‘시체를 옮기는 입구(屍口門)’라는 험악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차례 훼철의 위기를 넘기며 버텨온 광희문에는 문의 여러 이름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각의 이름에 얽힌 광희문의 특징과 역할,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도성의 동남쪽 작은 문(小門), 광희문의 역사와 변화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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럿거스대학교도서관 소장 그리피스컬렉션 속 서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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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15 ~ 2021-02-21
  럿거스대학교도서관 소장 그리피스컬렉션 속 서울풍경 개화기를 전후하여 조선에 체류 또는 연구했던 서양인들은 외교관, 선교사, 군인 등 다양한 신분으로 조선에 대한 인상과 수집한 자료를 견문록, 기행문 등의 형태로 서구사회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물들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촬영함으로써 개화기 조선시대 생활문화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그 중 『은둔의 나라, 한국』(1882)의 저자인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William E. Griffis, 1843~1928)는 수백 년간 한국 밖에서 생산된 한국 관련 기록들을 집대성하여 한국사를 저술한 최초의 미국인이었습니다. 그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들은 그의 모교인 럿거스대학교 도서관Rutgers University Library에 기증되어 그리피스 컬렉션Griffis Collection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그리피스 컬렉션 중 개화기 조선시대의 서울의 모습, 그리고 훼철되기 이전의 경복궁과 한양도성의 모습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존에 알려져 있었던 사진들이지만 기존의 사진보다 잔존상태가 좋아, 보다 세밀한 관찰이 가능하며 근대 서울 연구에 더욱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자료들입니다. 우리 박물관은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자료를 일일이 열람 및 촬영하고 분류, 연구하여 한국에 소개하고자 애쓰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故 양상현 교수님과 유영미 교수님의 복제파일을 故 양 교수님의 부인인 손현순 교수님을 통해 제공받아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1884~18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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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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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10 ~ 2021-05-09
메이드 인 청계천의 세 번째 전시인 '미디어아트×세운상가'는 세운ㆍ청계천변 상가의 장인匠人들이 예술을 만나 이룩한 뜻밖의 성취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1960년대 이후는 '속도의 시대'라 할 만큼 빠른 기술의 성장이 있었다. 이 시기에 건립된 세운상가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시장을 견인한 상징적인 장소였으며, 백남준이 기술을 응용해 예술을 실현한 때도 1960년대였다.   기술과 예술의 접점인 미디어 아트는 자연스럽게 기술적 진보와 궤를 같이 하여 왔다. 기획전 '미디어아트X세운상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특별한 만듦이 가능한 지점, 세운상가에서 이루어진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주목하였다. 수많은 실험적인 예술과 아이디어들이 세운상가를 거쳐 미디어 아트가 되는 과정을 함께 나누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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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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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04 ~ 2021-03-21
아버지 세대 청년시절의 일상과 마주하는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 「세대 공감 - 최달용의 서울살이」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다른 시대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서울의 삶을 함께 기억하는 전시를 통해 다양한 세대가 소통하고 교감하는 세대 공감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20세기 후반 서울과 서울살이는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그 변화는 해방둥이 서울사람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해방둥이들의 삶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룬 한국사회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합니다. 해방둥이 서울사람 최달용의 학교·직장·결혼 생활 등을 통해 1950~70년대의 서울살이를 공감해 보고자 합니다. 최달용님은 서울과 함께한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 평생 개인자료들을 수집하셨고, 그 중 일부인 1,181건을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청년 시절 최달용이 살아내었던 매일매일의 일상과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들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당시 서울의 시대상과 ‘아버지 세대’의 청년 시절 삶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1부 서울과 해방둥이의 성장 한국 현대사는 세계사를 뒤흔든 두 차례의 전쟁인 아시아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1945년, 만 35년간의 기나긴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감격의 환호성과 더불어 세상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처음 맞닥뜨려야 했던 세상은 이처럼 가난하고 참담한 현실이었다. 만 3년간 계속된 전쟁은 1953년 휴전협정과 더불어 끝났지만, 전후 복구는 더뎠다. 사람들은 전쟁의 상흔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지만, 1950년대 내내 정치는 혼란스러웠고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쳐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고, 한일수교와 월남전 파병이 단행된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한국경제는 성장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해방둥이들은 청소년기에 정치적 격동의 현장에 참여한 4·19세대이자,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끈 산업화의 첫 세대였다.   2부 피난 셋방살이에서 변리사가 되기까지 최달용은 광화문 인근에서 2남 3녀 중에 넷째로 태어났다. 5살 때 6·25가 일어났는데, 그는 전쟁을 느닷없는 쏟아지는 폭격의 공포와 시시때때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의 불안감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가족은 1950년 12월 경부선 열차에 올라타고 뒤늦은 피난을 떠났다. 대구에서의 피난생활은 집주인의 눈칫밥을 먹는 서러운 셋방살이, 교실도 없는 학교에서 운크라에서 기부받은 종이에 인쇄된 교과서로 공부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종전 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신당동의 어느 다세대 불량주택에서 십여 가구와 함께 살았다. 최달용은 국민학교 6학년인 1958년에 드디어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입시지옥’의 10대 학령기를 거쳤다.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최달용은 학업을 마쳤고, 취업과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일궜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였던 1960~70년대 사람들은 정부 주도적인 ‘위로부터의 근대화’ 노선에 따라 배 곪지 않고 잘 살기 위해 밤낮 없이 일했다. 시련과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에 성공한 해방둥이들의 삶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룬 당시 한국사회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청년 시절 최달용의 삶을 담아낸 기록과 자료를 통해 1950~1970년대 해방둥이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3부 우리, 서울에서 살아가다. 현대 한국의 사회변동을 흔히 ‘압축 근대화’라 일컫는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식민화와 전쟁의 시련을 딛고 짧은 기간에 초고속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까지 성공적으로 달성한 한국사회의 변화가 비견할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된 독특한 사례임을 의미한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서울이 바로 이 압축 근대화의 주 무대였음을 뜻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해인 1962년 100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국민소득이 40년만에 1만 달러로 100배 이상 늘어났듯이, 1953년 100만 명도 채 되지 않던 서울의 인구는 40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 10배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세기 후반의 반 세기동안 서울이 경험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상은 그 격동의 시공간을 마음속에 원풍경(原風景)으로 담은 여러 세대들 간에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빚어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식민지·전쟁 체험 세대, 1950년대에 태어난 산업화 세대, 1960년대에 태어난 민주화 세대, 1980년대에 태어난 탈냉전·정보화 세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등등.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에 적응하여 살아간다. 오늘날 서울에는 ‘한강의 기적’의 출발점과 도착점 간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다른 시대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다.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얼마나 다른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이질적 존재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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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지켜라_삼군영 소속 한 군인 집안의 고군분투기
한양을 지켜라_삼군영 소속 한 군인 집안의 고군분투기 관련이미지
전시기간2020-12-04 ~ 2021-03-21
이번 전시는 대를 거쳐 무관으로 살아간 한 집안을 통해 삼군영三軍營을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삼군영은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제 정비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 군영으로,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이 이에 속합니다. 삼군영의 군인들은 한양에 상주하며 왕의 호위와 궁궐 수비, 도성 방어와 치안 유지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군사 활동 이외에도 준천濬川이나 금송禁松 등 도시 유지를 위한 역에 동원되기도 하였고, 적은 급여로 인해 여러 생업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삼군영 군인들의 활동은 수도 한양이 도시로서 기능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상도 영산慶尙道 靈山[현재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일대]의 양반이었던 이지건李枝建과 그의 가족들을 통해 삼군영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남긴 준호구와 교지 등에는 그들이 맡았던 직임뿐 아니라 과거에 합격한 일, 집의 소유 여부 등 어찌 보면 매우 소소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삼군영 군인들의 군사적 소임과 그들의 일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생동했던 조선후기 한양과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군인들의 삶을 바라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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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사박물관 상설전시(1층) 온라인 관람
서울생활사박물관 상설전시(1층) 온라인 관람 관련이미지
전시기간2020-12-03 ~ 2029-12-31
노원구 공릉동 구 북부법조단지 부지에 조성된 서울생활사박물관은 도시재생 관점에서 기존의 법원 및 검찰청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문화 시설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해방 이후 서울시민들의 일상 생활사를 결혼·출산·교육·주택·생업 등의 주제로,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생생한 인터뷰와 관련 유물을 통해 추억을 회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을 통해 온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소소한 일상과 장롱 속 물건들이 보물처럼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골방 속 깊숙한 곳, 나 혼자만 간직했던 열정에 다함께 박수를 보냅니다. 바로 이곳,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서울에 사는 보통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상설전시실 1(1층) - 서울에 살다 6.25전쟁 직후 폐허와 재건이 혼재하는 1950년대 서울,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던 1960~80년대 서울, 시민들의 시선에서 바라 본 현재의 서울을 사진과 영상자료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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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전시관 상설전시 온라인 관람[업데이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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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02 ~ 2029-12-31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입니다. 1396년(태조 5) 한양도성이 1차 완공되었을 때 ‘의義를 두텁게 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돈의문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1413년(태종 13) 풍수를 이유로 문을 닫은 뒤, 1422년(세종 4) 현재의 ‘돈의문 터’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신문新門 또는 새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돈의문을 지나는 도로는 신문로 또는 새문안로라 불리고, 그 안쪽 동네는 자연스레 새문안 동네로 불렸습니다. 2003년 새문안 동네를 포함하여 교남동 일대가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3년 성 밖 교남동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새문안 동네 역시 근린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전면 철거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옛 도시조직을 모두 지워버리는 전면철거 대신 도시재생의 방법을 선택하였고, 골목을 따라 건물을 비우거나 혹은 보강하면서 도시의 오래된 층위와 풍경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2017년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9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일환으로 이 지역의 역사와 도시공간과 주거를 조사하여 돈의문 뉴타운 조사보고서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과 『도시민의 삶과 주거』 2권의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철거가 진행될 때는 현장에 나가 도시한옥의 주춧돌, 식당의 메뉴판과 그릇, 문패 등 동네의 이력을 담고 있는 사물 총 181건 526점을 수집하였습니다. 더하여 2013년 5월부터 민간연구모임의 교남동 일대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서울시는 새문안 동네의 건물을 실측하고 주민을 인터뷰하는 등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의 변화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결과물로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에서 총 307동의 건물에 대한 310장의 현장 기록 도면과 15,000여 장의 현장 기록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과 성과가 모여 돈의문역사관이 개관하였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와 한식식당 ‘한정’으로 사용되던 두 동의 양옥은 이제 아지오전시실과 한정전시실이 되었습니다. 돈의문역사관은 건물이 가진 기억을 그대로 되살리고자 전시실 이름도 식당 이름인 아지오와 한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조순대국’과 ‘고인돌’ 집은 교육관이 되었습니다. ‘무진장’과 ‘한양삼계탕’ 집터에는 발굴된 경희궁의 궁장과 생활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유적전시실을 조성하였습니다. 돈의문역사관은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장소,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저장하는 현장 박물관입니다. 돈의문역사관의 집과 골목을 걸으면서 가까운 과거를 추억하고, 사물과 기록의 오래된 기억을 회상하는 서울역사산책을 이어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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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상설전시 온라인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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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2-01 ~ 2029-12-31
임시정부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 경교장 사적 제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서울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가 서거한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을 원형 복원하고,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되살려 시민들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경교장을 복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를 임시정부의 지나온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으로 꾸며 '13. 3. 2(토) 부터 개방하고 있습니다. 경교장 복원공사는 1949년 백범 김구 서거 이후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평면을 철거하고, 이 과정에서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최대한 원형을 살려 복원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1938년 8월호)에 수록되어 있는 경교장 도면을 근거로 하여 복원하였습니다. 복원된 경교장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유물과 영상, 정보검색코너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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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교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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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1-26 ~ 2021-04-11
2020년 기증유물특별전 '서울학교 100년' 전시기간 : 2020년 11월 26일 ~ 2021년 4월 11일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B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기증자의 높은 뜻을 기리고 기증유물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자 매년 기증유물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올해는 개관부터 지금까지 기증받은 학교 관련 자료 중 서울시민 40명의 유물을 선별하여 전시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근대 교육이 처음으로 시작된 18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울학교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먼저 개화기에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양성을 위해 건립된 학교들을 소개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우민화 교육, 그리고 여기에 대항하는 우리의 교육구국운동을 살펴봅니다. 아울러 산업화 시기에는 폐허를 딛고 경제적 성장을 일구는데 일조했던 교육의 현장을 전시에 담았습니다. 이 전시는 오롯이 기증자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손때 묻은 교과서, 구겨진 양은도시락, 가슴 졸이며 받은 성적통지표, 빛바랜 소풍 사진에 깃들여 있는 기증자의 소중한 기억을 시민들과 나누고 공감하기를 기대합니다.   기증자 고희구 권용현 김경자 김기수 김대영 김정화 김준현 김현무 김혜림 김환석 도경재 박미경 박영민 박윤환 신상정 신승동 양진열 정백화 오은석 왕석산 원정상 유형태 이관수 이기현 이도화 천문기 이명래 이명환 이민우 이성우 이세준 임정의 장은영 정구일 조성해 지무룡 최한철 한석도 홍성표 황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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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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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11-13 ~ 2021-05-02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위치한 지역은 조선시대 한양 견평방으로 현재 청진동, 공평동, 인사동 일대이다. 의금부 등 여러 관청과 시전이 위치함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되었다. 특히, 견평방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시전에 직접 거주하며 생업에 종사하거나 인근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먼저 한양이 수도가 되면서 백성들의 주거지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견평방 가옥을 통해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아본다. 발굴·기록 자료를 근거로 당시 견평방에 위치했던 가옥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전시했다. 또한 이번 기획전에는 약 100년간 견평방에 있었던 가옥의 거래 과정 중에 생산됐던 고문서를 전시·해설해 한양에서 가옥이 거래되는 과정을 생생히 알 수 있다. 이번 기획전시와 연계한 특별강연도 마련하였다. 강연은 다음달 17~18일 오후 2시에 진행되며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좌도 병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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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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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09-15 ~ 2020-12-13
서울역사박물관-광주역사민속박물관 공동주최 「오월의 파노라마 展」 개최   -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서 9.15.(화)~12.13.(일)까지 전시 - 2020년 5월부터 8월까지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서 개최했던 '오월의 파노라마'전시 소개 -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들의 항쟁과 활동 공개 □  5.18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민주화운 당시 성명서, 보고서 등 생생한 자료를 전시하며      다양하게 얽혀있는 시선들 속에서 민주와 인권이 가지는 의미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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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관련이미지
전시기간2020-07-22 ~ 2020-11-15
라디오 방송의 도입과 변화 □ 1927년 시작된 한국의 라디오 방송 역사와 함께 서울에 위치했던 방송국들의 변화를 전시한다.   ○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 경성방송국은 광복 후 서울중앙방송으로 변모하였으며, 1948년에는 국영화되어 반공의식을 고취하고 정부 시책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 1954년 기독교방송을 시작으로 문화방송, 동아방송, 동양방송 등이 차례로 개국하여 1960년대는 민영방송국들이 청취율 경쟁에 돌입했다.   ○ 1959년 국산 라디오가 생산됨에 따라 각 가정에는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TV 보급전인 1960~70년대에는 라디오 전성시대였다.   ○ 라디오 방송의 도입과 변화는 연표와 함께 최초 국산 라디오인 금성 A-501라디오, 1960년대 라디오 편성표 등의 유물과 방송국변화 영상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1978년 미아동 단독주택과 한 가족의 라디오 문화 □ 1978년 미아동에 살았던 가상의 영희네 가족을 통하여 1970년대 생활 모습과 라디오 문화를 조명한다.   ○ 1978년은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점차 라디오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으로 라디오 방송은 그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 이러한 변화 속 미아동에 살았던 가상의 고등학생 영희의 사연을 통해 아빠, 엄마, 오빠가 듣던 라디오 방송의 변화를 알아본다.   ○ 택시기사인 아빠의 포니 택시의 내부를 그래픽과 영상으로 재현하였으며, 아빠가 주로 듣던 보도프로그램을 통해 1978년 사회상을 짚어보고, 차량증가로 시작된 교통방송과 이와 관련한 교통통신원 표찰, 교통방송 ‘명랑교차로’ 손수건 등의 유물을 볼 수 있다.   ○ 재현된 미아동 주택 안방에서는 가정주부인 엄마의 라디오를 통해 1960 ~70년대 최고 인기를 끌던 라디오 드라마와 함께 교양방송에 대해 알아본다.   ○ 갓 대학생이 된 오빠방에서는 어학방송과 AFKN을 통한 라디오 교육방송과 프로야구 출범 전 인기를 끌던 고교야구를 통해 스포츠 방송의 변화에 대해 전시한다.   ○ 영희의 방에서는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DJ음악방송과 함께 사연엽서, 유명 DJ의 음반 등을 만나볼 수 있다. □ 전시장을 나가는 곳에서는 2020년 현재를 살고 있는 영희의 사연을 통해 다양한 매체 속에서 라디오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 1970년대 실제 라디오 방송인 ‘명랑교차로’, ‘0시의 다이얼’, ‘창밖의 여자’ 등 다양한 분야의 방송을 전시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 주인공 영희의 사연을 라디오 방송 DJ 황인용, 양희은, 서경석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다.   ○ 1978년 영희의 라디오 사연은 1970년대 동양방송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던 황인용의 음성을 통하여 아빠의 택시와 미아동 주택에서 들을 수 있다.   ○ 2020년 현재를 살고 있는 영희의 사연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진행하는 양희은, 서경석를 통해 들을 수 있으며, □ 특히 9월 2일(수) 오전 10시에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와 함께 기획한 특집방송 ‘우리 가족의 라디오(가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포토존과 라디오 체험공간 운영 □ 서울생활사박물관 로비에는 어린이들이 체험 할 수 있도록 라디오 스튜디오로 꾸민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   □ 라디오 DJ의 오프닝 멘트를 녹음하여 메일로 받을 수 있는 체험시설을 운영하여, 라디오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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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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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07-07 ~ 2020-09-13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 기간 : 2020년 7월 7일(화) ~ 9월13일(일)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로비 1998년 금모으기 운동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까지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을 박물관 1층 로비에 전시한다. IMF 경제위기를 딛고 일어나 세계를 향해 외쳤던 우리의 뜨거운 함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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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종가 입전(笠廛), 조선의 갓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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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05-29 ~ 2020-10-11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상반기 특별전  '운종가 입전笠廛, 조선의 갓을 팔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조선시대 한성부 견평방에서 출토된 16세기 도시유적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하여 조성한 도시박물관입니다. <의금부 금오계첩>에 이어 2020년의 첫 기획전으로 <운종가 입전, 조선의 갓을 팔다> 를 전시합니다.   재화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던 운종가에 있던 ‘입전笠廛’과, 그곳에서 팔던 조선 남성의 대표적 쓰개 ‘갓笠’ 을 소개합니다. 시대와 예법과 풍습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빛깔로 제작되었던 조선의 갓을 모아 전시합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 보존된 한양의 골목을 걸으면서 ‘입전’의 시전풍경市廛風景과 조선 ‘갓’의 격格과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서울역사산책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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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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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2020-05-19 ~ 2020-11-15
1975년 한양도성 보수·복원사업의 첫 삽을 뜬 이래, 한양도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고, 훼철 혹은 소실되었던 성문이 복원되었으며, 땅 속에 묻혔던 구간이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 시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존재하고 있는 한양도성이지만, 항상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 아닌 까닭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기록 자료로 본 한양도성〉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는 한양도성의 가까운 과거를 현재의 모습에 비추어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 속에 기록된 1960~70년대 한양도성이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함으로써 한양도성 보수·복원의 성과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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