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전차 (상세내용은 본문 참조)

서울의 전차

전시기간
2019-12-20 ~ 2020-09-27
전시장소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B
담당부서
전시과

전시소개

서울의전차

The Trams of Seoul

서울역사박물관과 한국전력공사가 공동으로 120년 전의 전차개통을 기념하며 전시를 열었습니다. 두 기관이 ‘전차’로 연결되어, 도시의 기억과 시민의 일상을 회상하는 ‘서울의 전차’ 전시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유물 뿐 아니라,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 보스트위크 사진첩, 한국전력공사 인사처 기록관의 기록 등이 전시됩니다.

서울의전차

The Trams of Seoul

일백 이십년 전 사월초파일에 돈의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전차가 개통되었습니다. 종로에 놓인 궤도를 따라 전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습니다.
1887년에 경복궁 건청궁에 전깃불이 들어왔고, 1897년에 덕수궁 중화전에서 대한제국이 선포되었고, 이어 1899년에 전차가 개통되어 한성은 바야흐로 근대도시로서의 기반시설을 갖추어가게 됩니다.

그로부터 1968년 마지막 전차가 운행을 마칠 때까지, 전차는 한성과 경성과 서울의 요긴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전차는 단순히 새로운 교통수단이었을뿐 아니라, 오백년 동안 한성부의 도심을 둘러싸고 있던 한양도성을 해체하는 동인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도시의 공간과 시간을 재편하고, 사람과 문물이 이동하는 근대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한국전력공사가 공동으로 120년 전의 전차 개통을 기념하며, 그 궤도를 따라 도시의 기억과 시민의 일상을 회상하는 ‘서울의 전차’ 전시를 개최하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한국전력공사 소장 보스트위크 사진첩들은 우리에게 잊혀진, 초기 전차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장 송인호

전차개통식 이미지

전차 개통식 / 1899년 전차라는 신기한 차가 달린다는 소식에 흥인지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모습이다. 8대의 전차가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근대로의 질주

The Rush into the Modern Age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9년, 전차가 한성漢城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넓게 확장된 도로 위 선로로 전차가 달리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는 서양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에서 전차가 가장 먼저 실용화된 때가 1881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매우 이른 시기에 도입된 전차로 인해 한성은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전차는 실상 고종의 근대화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고종은 1880년대부터 해외에 시찰단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대한제국 선포 후 본격적으로 서양의 최신 문물을 수용하였습니다. 전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한성으로 들어오는 주요 교통로에 전차 선로가 부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물자의 운반을 편리하고 빠르게 하여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자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산업 진흥이라는 당초의 목표뿐 아니라 전차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도 일으켰습니다. 도시의 경관이 변화하였고, 사람들의 의식 및 생활도 새로운 질서 속에 편입되었습니다. 전차의 질주는 그야말로 근대로의 질주였습니다.

근대로의 질주 이미지 : 전차 개통식날, 시운전하는 콜브란, 보스트위크, 마키 헤이치로, 이채연 - 1899년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전차가 지나는 종로거리 - 대한제국, 전차승차표와 지갑 - 1904년경, 신축된 종로의 한성전기회사 사옥 - 1902년 이후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최익현 압송도 - 대한제국 백제문화체험박물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한성전기회사 사무실에서의 골브란(좌)과 보스트위크(우) - 1901년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보스트위크 후손 기증 사진앨범 - 1900년대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Tracks and Wheels as New Feet

대한제국 시기에 4개였던 전차 노선은 한일병합 후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는 지선을 포함한 노선이 16개에 달했습니다.

노선이 널리 뻗어나갈수록 서울의 경관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궤도의 부설로 도성의 성문과 성벽이 훼손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편 일제는 1909년에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를 일한와사日韓瓦斯라는 회사를 통해 인수하였습니다. 이후의 노선은 철저히 일본인의 필요에 의해 생겼습니다. 이는 한성이 식민도시 경성부로 격하된 현실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의 곳곳을 이었기에, 전차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전차는 도심과 교외를 오가면서 생활권을 확대시켰고, 사람들의 생활도 역동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도시경계의 확장과 인구 증가만큼이나 전차의 수도 늘어났지만, 그 수요를 다 따라 잡지는 못했습니다. 1930년대 들어서 전차 안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고, 사람들은 30분 이상을 기다려야만 겨우 전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훼철되고있는 숭례문 - 1907년, 조선박람회 조감도-1929년, 경성전차안내-1930년, 전차승차권-일제강점기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경성전기회사 제복-일제감정기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경성전차 및  버스 안내도-일제강점기, SP음반 바람쟁이 전차 차장 - 1932년 문화공간 시현조성만소장
7O년간 운행의 종료

Tram Service Come to an End

해방 이후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만원전차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습니다. 전차는 여전히 서울의 대표 교통수단 이었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전차를 증편하거나, 또는 전차를 다른 교통 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시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교통 수요가 전차의 운행 범위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궤도 부설은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확장하는 도시에 발맞추어 궤도를 놓는 것보다는 버스를 통해 전차가 가지 않는 곳을 잇는 것이 효과적이었 습니다. 버스를 중심으로 한 교통시스템으로의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버스 승객의 증가는 전차 승객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운영주체였던 경성전기회사의 적자는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경성전기회사는 조선전업, 남선전기를 합병하여 한국전력회사라는 거대기업이 되었지만, 전차의 쇠퇴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전차의 마지막 운영은 서울시가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전력으로부터 인수한 전차 사업을 2년 만인 1968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차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한영수 촬영 1960년대, 서울특별시 전차 합승 급행뻐스 시내뻐스 교통안내-1966년, 서울전체궤도 사업양도서류철-1966년 한국전력공사 인사처 기록관, 전차광고 서류철-1961년 한국전력공사 인사처 기록관, 전차 승무원 배지와 단추-해방이후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마포종점-1968년, 마지막 전차운행-조선일보 1968년 11월 30일, 폐차되는 전차-이정하 촬영 1968년 이혜은소장, 광화문 광장의 육조거리토층 아스팔트 아래 묻힌 전차 선로와 침목-2000년대
첨부파일
서울의_전차_연장_포스터1.jpg (122 KB, image/jpeg, 다운 188 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