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유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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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굽는 풍경,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로서, 봄날 야외에서 주연(酒宴)을 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제목이나 주제를 글로 남긴 화제(畫題)가 없으나, 묘사한 바와 같이 봄의 경치를 즐기며 들에서 연회를 연다는 의미를 담아 ‘상춘야연도’로 명칭하였다. 우측 상단에 김홍도의 자(字)인 ‘사능(士能)’ 인장이 찍혀 있지만 후대에 다른 사람이 찍은 후낙관인 것으로 보이므로 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근거로는 부족하다. 다만 인물 묘사나 필치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와 매우 유사하여 김홍도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에서 유행한 난로회 풍속

 

조선 후기에 ‘난로회(煖爐會)’라는 풍속이 유행하였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서는 난로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울 풍속 가운데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불판을 올려 소고기를 굽고, 기름·간장·계란·파·마늘·고추가루로 조리하여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라고 한다. 이 달(10월)부터 추위를 막는 계절 음식으로 먹는다.

 

『동국세시기』는 홍석모가 쓴 책으로서, 18세기에서 19세기 무렵 조선의 세시풍속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난로회는 겨울이 올 무렵 함께 모여 화로와 숯불, 불판을 이용해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유래하여 당시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숯불 위에 불판을 얹어 고기를 굽는 것이나, 기름·간장·파·마늘 등의 양념을 사용하여 조리하였다는 점은 요즘의 불고기와 유사하여 흥미롭다.
 

당시 난로회는 비교적 폭 넓은 계층에서 즐긴 것으로 보이는데, 왕, 양반, 중인에 이르기까지 난로회에 대해 남긴 다양한 기록이 있다. 정조(正祖)는 1781년 겨울, 신하들과 매각(梅閣)에서 난로회를 열고 이들과 시를 지어 갱재축(賡載軸)을 만들었고, 연암 박지원은 눈 오는 날 방안에서 난로회 한 일을 글로 남겼다. 18세기 서울의 대표적 중인 문학 모임이었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박윤묵도 난로회를 소재로 시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밤에 난로회를 열다

 

촛불 켠 추운 밤에 따뜻한 화로 안고
옥 소반 붉은 고기, 맑은 술도 두었네

 

파루 소리 서로 잊고 배불리 취하여
봄바람에 흡족히 노래 지어 부르네
모르건대 술과 음식 충분히 남았는가
옆 사람 구석에서 외로울까 걱정이라

 

 

난로회가 유행하면서 이를 소재로 한 풍속화도 그려졌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난로회 풍속화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풍속도8첩병풍≫ 중 <설후야연(雪後野宴)>으로서 눈 내린 산성 아래 기생들과 함께한 난로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와 유사한 <야연(野宴)> 등의 풍속화가 소장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상춘야연도>는 위 그림들과 달리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뀔 무렵을 배경으로 남자 넷이 벌인 조촐한 난로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난로회 모습

 

나뭇가지에 하얀 봉오리들이 올라오니 오래지 않아 매화가 만개할 것 같은 시절이다. 커다란 바위와 매화나무를 병풍 삼아 네 명의 남자가 술자리를 벌였다. 동그란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술병과 고기가 든 쟁반은 옆에 놓아두었다. 세 남자는 비교적 가벼운 차림으로 신발 벗고 바닥에 주저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 왼쪽의 탕건 쓴 사내는 젓가락으로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으며, 오른쪽 사내는 고기에 양념 하여 판 위에 올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가운데 앉은 이는 모임의 연장자인지 홀로 편히 고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셋과 달리 오른쪽에 홀로 선 남자이다. 얼굴가리개[遮扇]를 든 채 뒷짐 진 모습이 영락없이 체면 차리는 양반 모습이다.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불판을 향한 그의 눈길이나 갓끈을 풀어 내린 모습을 보면 고기 한 점 하고 싶은 속내가 보이는 듯하다. 연회를 함께 즐기지 못하고, 구석에서 홀로 쓸쓸해 하는 사람의 모습을 일컬어 ‘향우지탄(向隅之歎)’이라 하는데, 마치 이 사람을 가리키는 말 같다. 네 남자의 난로회는 이제 막 시작한 듯 서먹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고기가 점점 익어가고 분위기도 무르익으면 체면은 벗어놓고 다함께 둘러 앉아 즐겼으리라.

 

 

금지된 맛, 소고기

 

농업을 나라의 근간으로 한 조선에서는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우금(牛禁) 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만 소의 도살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어서 제례를 위해 성균관 현방(懸房)에서 합법적으로 소를 도살하여 소고기를 유통하기도 하였고, 다치거나 병든 소는 도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고기에 대한 수요는 늘 이보다 많았고, 조선 후기에는 난로회 같은 연회가 유행하기도 하면서 불법적인 소 도살이 끊이지 않았다.
 

소 도살이 금지되어 있는 시대에 소고기를 맛본다는 것은 합법과 불법의 사이의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살생을 금한 불가(佛家)의 승려와 같지는 않겠지만, 사대부들이 고기를 탐하는 것도 그리 아름다운 일은 아니었다. 산 속에서 소고기 굽는 그림 속 인물들이 마치 일탈을 감행한 학생들처럼 흥미롭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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