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유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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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제이화문합은 몸체와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는 용기로 20세기 초반에 제작되었으며, 높이 3.5cm, 지름 5.5cm이다. 뚜껑은 중앙 부분이 약간 봉긋하게 올라와 있으며, 가장자리의 테두리는 표면보다 조금 높게 처리하여 입체감을 더했다. 뚜껑 중앙에 금색 이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봉황, 상하에는 모란꽃을 부조 형태로 장식하였다. 문양은 광을 살려 마무리하였는데 요철을 줘 광택을 없앤 표면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도록 하였다. 합의 몸체에는 6개의 풍혈이 있으며 그 사이 여백을 식물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이 유물은 2016년 테일러 家에서 서울역사박물관에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유품을 비롯한 가문의 자료를 기증할 때 함께 인수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양도성 성곽 자락에 딜쿠샤를 지어 살았던 바로 그 앨버트 테일러이다. 그는 미국의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1897년에 조선에 왔으며, 광산업과 테일러 상회를 경영하였다. 당시 테일러 상회는 수입품 주문을 대행하고 생활용품, 자동차, 영화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였다. 그리고 테일러 골동품점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전통가구, 도자기, 공예품 등을 거래하였다.

 

이 유물은 이화문이 부착되어 있어 조선 왕실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것 외에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여러 부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화문합 몸체의 뒷면에 제품의 재질과 제작소를 표시한 ‘순은(純銀)’. ‘고바야시 제작(小林製)’이 각인되어 있는 점이다. 고바야시(小林)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시계, 금속 공예품 등 여러 종류의 물품을 제작, 판매하던 일본의 유명한 상점인 고바야시 시계점(小林時計店)을 말한다. 고바야시 시계점은 일본 황실로부터 물품의 주문을 받아 제작·납품하던 곳으로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이 상점을 이용하였다. 조선의 왕실에서 사용한 물품을 일본의 어용 상점에서 제작한 사례로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제품의 생산 환경 변화를 알 수 있는 유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태의 사탕이나 과자를 담는 작은 용기를 프랑스어로 봉보니에르(bonbonnière)라고 부르는데 명치(明治) ~ 소화(昭和) 시기에 일본 황실의 즉위, 결혼, 탄생 등이 있을 때 행사에 초대된 참석자들에게 답례용으로 봉보니에르를 제공하는 것이 대단히 유행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조선 왕실도 비슷한 용도로 주문제작하여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테일러 가문이 이화문합을 소장하게 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왕실과의 인연이나 테일러 상회의 영업 범위, 사업상 취급 물품 등에 대한 다양한 연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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