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 수어 영상 '눈으로 듣는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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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기간 : 2022-01-05 ~ 2024-12-31

영상자막
(화면설명) 눈으로 듣는 한양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나! 친구야, 숙제 좀 도와줘! 어서와~ 한양은 처음이지? 윤지수 오후2:21 : 친구야~ 나 좀 도와줘. 학교 발표가 있는데 내가 ‘조선의 서울’을 맡았어. 조슬희 오후2:21 : 그래? 서울의 역사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가면 되겠네. 윤지수 오후2:21 : 내가 떡볶이 살게. 좀 도와주라 조슬희 오후2:21 : 떡볶이? 그래 좋아! 내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보자~ 윤지수 : OK 어느 화창한 가을날, 서울역사박물관 앞 왜 안오는거야?ㅠㅠ 늦었다! 늦었어ㅠㅠ 조슬희 : 왜 이렇게 늦은거야? 윤지수 : 아, 미안 미안. 시간 맞춰 왔는데 저 앞에 있는 전차 구경하느라 늦었어 (화면설명) <전차3.81호.(국가등록문화재 제 467호) 조슬희 : 아~ 저거, 1968년까지 서울에 다녔던 전차야. 윤지수 : 오~ 조슬희 : 자 얼른 들어가자 윤지수 : 입장권은 내가 살게 조슬희 : 여긴 무료야. 그냥 들어가면 돼. 윤지수 : 정말? 조슬희 : 이쪽이야. 오늘은 내가 서울의 600년 전 모습을 자세히 소개해 줄게. 윤 : 그래. 조슬희 : 이곳이 조선시대 서울을 볼 수 있는 곳이야. 들어가자. 윤지수 : 좋아. 윤지수 :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양’이라고 하잖아. 조슬희 : 오~ 그럼 조선을 세운 왕도 알아? 윤지수 : 당연하지. 태조 이성계잖아. (화면설명) <태조 이성계 초상화>(1872, 국보 제317호, 어진박물관) 조슬희 : 응. 맞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한양을 새 나라의 수도로 삼았어. 윤지수 : 왜 수도를 힘들게 새로 옮긴 거야? 조슬희 : 개경은 고려의 수도였기 때문에 새 왕조에서의 권력 강화를 위해서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처음에 정한 수도는 한양은 아니었어. 윤지수: 진짜? 그러면 어딘데? 조슬희 : 처음에는 계룡산 부근을 수도로 정했지. 윤지수 : 여기? 수도는 나라의 가운데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조슬희 : 오~똑똑한데.맞아! 너와 같은 이야기를 한 신하가 있었어. “도움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합니다” - 하륜, 「호정집」 그 신하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최종적으로는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되었어. 윤지수 : 지금까지 서울이 수도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탁월하나 선택이었네. 조슬희 :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이제 수도에 맞게 한양을 건설해야 했어. 윤지수 : 내가 왕이라면 제일 먼저 궁궐을 지을 것 같아. 조슬희 : 그렇지. 한양에서 가장 좋은 위치인 백악산 아래에 경복궁(1395)을 지었어.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조상을 모신 사당인 종묘(1395)를, 오른쪽에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1395)을 세웠어. 윤지수 : 그게 다야? 조슬희 : 아니지. 한양을 둘러싼 산을 연결하여 수도를 지키는 한양도성(1396)을 쌓고, 태종 때는 시장인 시전(1412)을 건설했어. 윤지수 : 그래, 시장은 꼭 필요하지. 이제 수도로서의 모습이 갖춰졋네. 이제 다 알았어. 그만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조슬희 : 어쭈~ 아직 멀었어. 여기 봐봐. 윤지수 : 알았어. 윤지수 : 음~ 조선시대 전국지도 같은데~ 조슬희 : 맞아. ‘조선팔도고금총람도’라고 하지. (화면설명) <조선팔도고금총람도>(1673, 보물 제1602호) 이 지도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한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어. 여기서 수도 한양을 한번 찾아볼래? 윤지수 : 설마 여기? 한양이 수도이기는 해도 이렇게 크지는 않을 텐데~ 조슬희 : 잘 찾았어~ 수도 한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한양을 실제보다 크게 그린거야. 윤지수 : 그래? 아 ~ 꼬불꼬불한 것이 한양도성이구나. 조슬희 : 어~ 수도를 뜻하는 ‘경도’라고 쓰인 글자도 볼 수 있어. 윤지수 : 와~ 역사에 한자까지! 내가 친구를 잘 두었군! 재밌는데. 한양을 좀 더 자세히 그린 지도는 없어? 조슬희 : 있지. 너가 직접 찾아봐. 윤지수 : 좋아. 내가 찾아볼게. 윤지수 : 저거네~ 조슬희 : 맞아. 윤지수 : 진짜 크다! 나보다 더 커. 이름이 ‘대성대지도’구나. (화면설명) <도성대지도> (1754~1760,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7호) 조슬희 : 한양의 모습을 담은 가장 큰 지도란 뜻이야. 윤지수 : 그래? 여기에 경복궁도 있어? 조슬희 : 경복궁은 여기야. 처음에는 궁궐이 경복궁 하나였지만 조선 3대 왕 태종이 창덕궁(1405)을 지으면서 두 곳이 되었어. 윤지수 : 잠깐만, 궁궐이 더 있잖아. 조슬희 : 이후 창경궁(1483), 경희궁(1617) 등이 차례로 지어졌어. 이 궁궐들이 한양 도시구조의 중심이었어. 윤지수 : 아 ~ 그래? 이때는 사진이 아직 없지? 조슬희 : 당연히 없지 윤지수 : 아~ 아쉽다. 조슬희 : 뭐가? 윤지수 : 궁궐이 한양의 중심이라며? 그 때의 모습이 궁금해서~ (화면설명) <비변사계회도> (1550,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31호) 조슬희 : 사진은 없지만 그림이 있잖아. 이 그림에서 조선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윤지수 : 와~ 보여.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광화문도 보이네. 광화문 앞에 큰 길이 나 있어. 뭐야?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조선시대에도 있었어? 조슬희 : 조선시대에는 여기를 ‘육조거리’라고 했어. 육조거리를 보러 갈래? 윤지수 : 좋아. 얼른 가자. 조슬희 : 같이 가~ 윤지수 : 와~ 멋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길 양쪽에 건물이 많아? 조슬희 : 응. 그거~ 나랏일을 하는 중요한 기관들이 모여 있어서 그래. 윤지수 : 아~ 그렇구나. 그럼, 왕의 명령이 이 길을 통해 각 관청에 전달되는 거구나. 조슬희 : 오~ 이제 하나를 알려주니 둘을 아는구나. 기특해. 우리가 한양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잖아. 수도 한양을 관리하는 관청도 여기에 있어. 윤지수 : 아! 그렇겠다. 내가 찾아볼게. 조슬희 : 잘 찾아봐. 조슬희 : 뭐해? 윤지수 : 한성부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청 역할을 하는 거래. 조슬희 : 오~~ 맞아. 그리고 당시 한양 사람들은 한성부 총책임자를 ‘한성판윤’이라고 불렀어. 오늘날의 서울시장과 비슷하지. 윤지수 : 사람들을 관리한다고? 어떻게? 조슬희 : 바로 호패가 그 역할을 했어. 저기 호패가 있어. 윤지수 : 좋아. 윤지수 : 이게 호패야? 조슬희: 호패는 조선시대의 주민등록증인 셈이야. 16세 이상의 남자만 받을 수 있어. 윤지수 : 우리는 만 17살이 되면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달랐구나. 한성부가 하는 일이 많네. 조슬희 : 한성부가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잘 해 나가고 있었어. 한양은 이렇게 수도의 역할을 잘 해 나가고 있었어. 그런데 이러한 한양에 큰 위기가 왔어. 윤지수 : 임진왜란이 일어났구나. 조슬희 : 어~ 임진왜란으로 수도 한양의 대부분의 시설과 가옥들이 불에 타 버렸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여기 있어. (화면설명) <판문> (16세기 후반~ 17세기 전반) 이것은 나무로 만든 문의 일부분이야. 종로구 청진동에 나온 이 ‘판문’은 임진왜란 때 한양의 큰 화재로 불타서 400년이나 넘게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해. 윤지수 : 오래된 거구나. 전쟁 후 파괴된 도시 시설물을 다시 지은 거지? 조슬희 : 응. 하지만 그때에는 경복궁을 다시 짓진 않았어. 나중에 고종 때 다시 지었지. 윤지수 : 그랬구나. 잠깐만, 저건 무기 같은데? 조슬희 : 무기? 뭐지? 무기는 잘 모르는데. 윤지수 : 걱정하지마. 무기는 내가 좀 알지. 윤지수 : 이것은 ‘별조자총통’이야. (화면설명) <별조자총통>(1591, 청계천 출토) 임진왜란 시기에 사용했던 주력 무기야. 만들어진 시기(만력 19년, 1591년), 무게(17근 6량, 약10kg)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조슬희 : 아~ 조선시대에는 이런 무기가 있었구나. 윤지수 : 맞아. 전쟁을 겪으면서 조선의 약한 방어력이 드러났어. 그래서 전쟁 중에 한양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군대인 훈련도감을 만들게 되었어. 조슬희 : 그럼 이제 한양은 안전한 거야? 윤지수 : 아니야. 병자호란 때 중국 청나라 군대가 조선군을 피해 한양을 직접 공격했어. 조슬희 : 수도 한양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방법과 준비가 필요하구나. 윤지수: 맞아! 그래서 한양의 방어 범위를 세 곳으로 나누었어. (화면설명) <도성삼군문분계지도> (1751,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또 세 군대로 하여금 세 지역을 지키라고 명령했어. 세 군대 이름은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이들을 합쳐서 ‘삼군영’이라고 불렀어. 당시 조선의 왕 영조가 명령을 내려, 삼군영과 한양의 백성들에게 각 지역을 함께 지키도록 했어. 조슬희 : 한양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었겠어. 윤지수 : 그런데 한양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 조슬희 : 응. 조선후기가 되면 한양의 인구가 늘어나.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양으로 몰려들었거든. 윤지수 : 그럼, 한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은 시장이겠구나. 조슬희 : 그렇지. 내가 그 시장 구경시켜줄게. 따라와~ 조슬희 : 바로 여기야. 윤지수 : 와~ 멋있다. 조슬희 : 여긴 운종가야. 이 단어에는 재미있는 뜻이 있어. 윤지수 : 뭔데? 조슬희 :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이야. 윤지수 :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는지 알 수 있겠어. 조슬희 : 운중가에 있는 가게를 ‘시전’이라고 했어. 시전은 나라에 물품을 공급하고 독점적으로 판매했는데, 그중 여섯 가지의 대표적인 물품을 판매하던 가게를 ‘육의전’이라고 해. 윤지수 : 그런데 당시 운종가에 이런 시전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 조슬희 : 저기 시전이 잘 그려진 지도가 있거든 (화면설명) <수선총도> (19세기 중엽,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8호) 조슬희 : 이 지도를 보면 길을 따라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윤지수 : 지금의 종로도 가게가 많고 번화한데 조선시대에도 그럤구나. 소비가 많은 한양으로 많은 물건들이 모이겠어. 조슬희 : 맞아. 한양으로 ㅁ낳은 물건들이 뱃길을 통해 들어왔어. 그 뱃길 중심지가 ‘경강’ 바로 지금의 한강이야. 윤지수 : 배가 많이 다녔겠구나. 그 배도 볼 수 있어? 조슬희 : 그럼. 따라와~ 윤지수 : 배가 이거야. 돛의 색깔이 누렇네. 조슬희 : 맞아. 그래서 ‘황포돛배’라고 불러. 바닥이 평평해서 수심이 깊지 않은 강도 잘 건널 수 있었어. 윤지수 : 와. 신기하네. 한양으로 어떤 물건들을 실어 날랐어? 조슬희 : 너가 만약 한양 사람이라면 제일 필요한 물건이 뭐야? 윤지수 : 나라면...음~쌀?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잖아. (화면설명) <경강부임진도>(19세기 전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슬희 : 맞아. 한양 안에서 필요한 쌀, 목재, 소금 등 중요한 것들이 거래되었어 <동여도> 이렇게 경강에서 활동하는 상인을 ‘경강상인’이라고 불렀어. 윤지수 : 장사가 잘 되었겠어. 조슬희 : 그렇겠지. 경강상인은 운종가의 시전(상업)과 함께 조선후기 한양을 상업도시로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어. 윤지수 : 그런데 뱃길 외에 다른 길은 없었어? 조슬희 : 당연히 있지. 뱃길 이외에도 한양과 지방을 잇는 큰 길이 있었어. 그 길을 따라서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한양으로 모이면서 상업도시 한양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게 되었어. 윤지수 : 아~ 그럼 한양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것도 당연하구나. 조슬희 : 맞아. 이렇게 한양은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북적이며 어울려 사는 도시가 되었어. 윤지수 : 사람이 많아지면 한양도 좀 커져야 되는 거 아니야? 조슬희 : 오~ 이제 제법인 걸. 저기 지도를 보면서 말해줄게. (화면설명) <동여도> <경조오부도> (19세기, 김정호, 보물 제1358-1호) 조슬희 : 이 지도를 봐~ 도성을 기준으로 한양은 안과 밖이 나뉘어져. 조선후기에 오면 도성의 바깥 10리(4km)까지가 한양에 포함되어 한성부가 관리하였어. 이 영역을 도성 밖 ‘성저십리’라고 해. 윤지수 : 한양의 범위가 도성 안에서 그 밖으로 점차 커졌구나. 한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네. 조슬희 : 그럼 이제 도성 안에 어떤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는지 같이 보자. 도성 안은 행정적으로는 동·서·남·북·중부 5부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또 지형과 물길을 중심으로 서촌, 웃대, 북촌, 동촌, 아랫대, 중촌, 남촌의 지역으로 구분하기도 해. 윤지수 : 어~ 운종가와 중촌이 가깝구나. 조슬희 : 맞아. 중촌은 현재의 청계천인 개천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 쪽을 말해. 근처에 왕이 사는 궁궐과 광화문 거리(육조거리)가 있었고, 시장이 있기 때문에 생활이 편리한 곳이야. 윤지수 : 이곳에 누가 살았어? 조슬희 : 주로 역관, 의관 같이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중인과 관리, 상인들이 살았어.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에 있는 중간 신분이었지만 조선후기에는 전문적인 능력으로 주요 신분으로 성장했어. (화면설명) <백자 항아리>(15세기말~16세기초,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보물 제1905호) 윤지수 : 종로 청진동 피맛골에서 백자항아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중촌 사람들이 쓰던 것일 수 있겠구나. 조슬희 : 중인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웃대에서 시를 읊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꽃 피우기도 했어. 윤지수 : 북촌은 경복궁 옆에 있는 마을이지?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놀러 갔었어. (화면설명) <옥호정도>(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조슬희 : 그랬구나.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어. 여기에는 권력을 가진 부자들이 대대로 살았어. 이들을 ‘경화사족’이라고 해. 그리고 동촌에는 조선시대인 대학교라 할 수 있는 성균관이 있어. (화면설명) <태학계첩><반궁도>(1747,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4호) 윤지수 : 한양을 지키는 군대가 동촌 아래쪽에 있거든. 그러면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아랫대에 살았어? 조슬희 : 맞아. 윤지수 : 여기는 남산이야. 나 남산에서 봉수대를 봤어. 불이나 연기를 통해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옛 통신수단이었잖아. 조슬희 : 봤어? 맞아. 조선시대 남산에는 봉수대와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는 국사당도 있었어. 남산 아래쪽에 있는 마을인 남촌은 정약용과 이순신 등 조선의 위인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해. 윤지수 : 이렇게 도성 안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고 다 특징이 있구나. 그럼 도성 밖은 어때? 조슬희 : 도성 밖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 상업이 발달하면서 도성 안 사람들은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 먹었어. 윤지수 : 오늘날 도시 사람들이랑 같구나. 조슬희 : 그래서 도성 밖의 사람들은 도성 안 사람들에게 찬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어. 당시에 왕십리의 무와 청파 지역의 미나리가 유명했어. 윤지수 : 아, 도성 안과 밖의 사람들이 서로 돌봐가며 살아가고 있었네. 조슬희 : 자~ 설명은 이제 끝이야. 너 학교 발표도 해야 하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해 봐봐. 윤지수 : 잠깐만...음...수도이자 왕이 사는 도시로 계획된 한양은 전쟁을 극복한 후 다양한 사람들과 각 지방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모여드는 상업 도시로 발전했지. 으쓱으쓱 뭐 이정도. 조슬희 : 오~ 훌륭해. 훌륭해. 잘했어. 윤지수 : 오늘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 너 덕분에 어렵게 느껴졌던 한양을 쉽게 알게 되었어.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어 좋았어. 그런데 조선시대 이후의 서울 이야기도 알 수 있어? 조슬희 : 그럼. 여기 다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으니 다음에 또 같이 오자. 윤지수 : 그래. 오늘 역사여행 너무 즐거웠어. 덕분에 학교 발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 이제 떡볶이 먹으러 가자. 안녕! 다음에 또 봐요. ‘눈으로 듣는 한양’ 상설전시 수어 영상은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서울농학교가 함께 한 1년간의 공동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학생들은 역사 학습부터 시나리오 작성, 수어 연습·해설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