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소초
- 유물명 북유소초
- 유물번호 서울역사053461
- 수량(점) 1
- 시대 한국/조선/1875
- 크기 세로 : 30.4 가로 : 19 두께 : 0.7
- 재질 지
- 주제/장르 전통유물/전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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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은 19세기 역관 출신의 문신 변원규(卞元圭)가 1875년 경 함경도 지역을 다녀오며 지은 시와 소회 등을 기록한 2권 1책의 필사본 '북유소초(北遊小草)'이다. 유일본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19세기 역관 출신의 문신 변원규로 추정된다. ‘奉讀石坡閤下下札’ 이하를 보면 저자가 쓴 시를 석파 이하응이 고쳐서 보내온 것에 대해 “이것은 석파 합하의 문장인가, 원규의 시인가?[閤下之文耶 元圭之詩耶]”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당시 대원군 이하응과 친분이 있었던 변원규의 저술로 볼 수 있다.
변원규(1837-?)의 본은 초계(草溪)에서 분관한 밀양(密陽)이며, 자는 대시(大始), 호는 길운(吉雲)·주항(蛛舡) 등이다. 변원규의 집안은 역과와 의과 및 무과 입격자를 많이 배출한 중인 명문가였으며, 그는 1855년 역과에서 한학(漢學) 전공으로 장원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사행에 역관으로 참여하여 당상역관에 오르고 적성현감, 가평군수,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책의 내용은 변원규가 1874년에서 1876년 사이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함경도 지역을 다녀오면서 쓴 기행 감상을 시로 쓴 것이다. 여행 중 만나거나 편지를 통해 왕래한 사람들에게 쓴 시 등도 수록되어 있다.
권1의 첫 번째 시 ‘書懷’에는 “집에서 밥 먹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왕명으로 가는 길을 어찌 사양하겠는가?[家食旣云久 王程寧敢辭]”라는 표현이 있어, 변원규가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북쪽에 다녀오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청사행은 보통 의주로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가는데, 변원규의 행로는 포천으로부터 함경도의 함흥, 종성 등으로 이어지므로, 사행의 목적은 분명치 않다.
변원규는 함흥에서 도사 한진현(韓震鉉)을 만나는데, 함경도사 한진현은 1874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그해 7월 12일에 함경도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그의 관력을 확인할 수 없으나, 1876년 6월 8일에 오두영(吳斗映)을 함경도사에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있으므로 한진현의 함경도사 재임기간은 대략 1874년 7월에서 1876년 6월일 것으로 추정된다. 변원규는 이 시기에 한진현을 만났을 것이며, 여행 중에 추석과 새해를 보냈으므로 <북유소초>의 작성시기는 1874년 후반에서 1876년 초 사이일 것으로 보인다.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변원규의 여행경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권1)
抱川-鐵原-豐田-金化-金城-店基-銀溪-鐵嶺-元山-德源-文川-永興-咸興
(권2)
摩雲嶺-摩天嶺-明川-鬼門關-鏡城-會寧-鍾城-寧州-(복귀)-鬼門關-谷口-高原-鐵嶺
<서지사항>
서명 : 北遊小草(卷首題), 北遊小草(標題)
편저자 : 卞元圭(1837-미상, 朝鮮) 著
사부분류 : 史部 地理類 紀行
판사항 : 筆寫本
발행사항 :
형태사항
- 권책수 : 2卷1冊
- 판식 : 上下單邊 左右雙邊 / 半郭 17.8×13.2cm
- 행자수 : 10行 21字
- 계선 : 有界
- 판심 : 白口 無魚尾
- 크기 : 23.3×16.2cm
- 장정 : 線裝(四針眼訂)
저자는 19세기 역관 출신의 문신 변원규로 추정된다. ‘奉讀石坡閤下下札’ 이하를 보면 저자가 쓴 시를 석파 이하응이 고쳐서 보내온 것에 대해 “이것은 석파 합하의 문장인가, 원규의 시인가?[閤下之文耶 元圭之詩耶]”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당시 대원군 이하응과 친분이 있었던 변원규의 저술로 볼 수 있다.
변원규(1837-?)의 본은 초계(草溪)에서 분관한 밀양(密陽)이며, 자는 대시(大始), 호는 길운(吉雲)·주항(蛛舡) 등이다. 변원규의 집안은 역과와 의과 및 무과 입격자를 많이 배출한 중인 명문가였으며, 그는 1855년 역과에서 한학(漢學) 전공으로 장원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사행에 역관으로 참여하여 당상역관에 오르고 적성현감, 가평군수,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책의 내용은 변원규가 1874년에서 1876년 사이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함경도 지역을 다녀오면서 쓴 기행 감상을 시로 쓴 것이다. 여행 중 만나거나 편지를 통해 왕래한 사람들에게 쓴 시 등도 수록되어 있다.
권1의 첫 번째 시 ‘書懷’에는 “집에서 밥 먹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왕명으로 가는 길을 어찌 사양하겠는가?[家食旣云久 王程寧敢辭]”라는 표현이 있어, 변원규가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북쪽에 다녀오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청사행은 보통 의주로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가는데, 변원규의 행로는 포천으로부터 함경도의 함흥, 종성 등으로 이어지므로, 사행의 목적은 분명치 않다.
변원규는 함흥에서 도사 한진현(韓震鉉)을 만나는데, 함경도사 한진현은 1874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그해 7월 12일에 함경도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그의 관력을 확인할 수 없으나, 1876년 6월 8일에 오두영(吳斗映)을 함경도사에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있으므로 한진현의 함경도사 재임기간은 대략 1874년 7월에서 1876년 6월일 것으로 추정된다. 변원규는 이 시기에 한진현을 만났을 것이며, 여행 중에 추석과 새해를 보냈으므로 <북유소초>의 작성시기는 1874년 후반에서 1876년 초 사이일 것으로 보인다.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변원규의 여행경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권1)
抱川-鐵原-豐田-金化-金城-店基-銀溪-鐵嶺-元山-德源-文川-永興-咸興
(권2)
摩雲嶺-摩天嶺-明川-鬼門關-鏡城-會寧-鍾城-寧州-(복귀)-鬼門關-谷口-高原-鐵嶺
<서지사항>
서명 : 北遊小草(卷首題), 北遊小草(標題)
편저자 : 卞元圭(1837-미상, 朝鮮) 著
사부분류 : 史部 地理類 紀行
판사항 : 筆寫本
발행사항 :
형태사항
- 권책수 : 2卷1冊
- 판식 : 上下單邊 左右雙邊 / 半郭 17.8×13.2cm
- 행자수 : 10行 21字
- 계선 : 有界
- 판심 : 白口 無魚尾
- 크기 : 23.3×16.2cm
- 장정 : 線裝(四針眼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