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세휘 간찰
- 유물명 박세진·세휘 간찰
- 유물번호 정해동기증001880
- 수량(점) 1
- 시대 한국/조선/1688
- 크기 세로 : 23 가로 : 35.1
- 재질 저지
- 주제/장르 전통유물/고문서/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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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숙종 14) 7월 22일에 박세진(朴世振)·세휘(世輝)가 상대방에게 조정에서 삼정승(三政丞)을 유배보내는 일과 부제학(副提學) 최석정(崔錫鼎)을 국문하는 건과 관련해 들은 사실에 대해 놀라움과 답답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미상이다. 박세진(생몰년 미상, 본관 반남)·세휘(1625~?. 본관 반남) 형제는 상대방에게 무더운 날씨가 건강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들은 노병(老病)이 날로 심해서 늘 자리보전하고 있다. 더욱이 세휘는 지난달부터 다리에 종기가 나서 한달동안 고생하다가 이제야 조금 회복되었는데, 또 눈병까지 생겨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영의정과 우의정·좌의정이 갑자기 유배의 명을 받았다는 것[『조선왕조실록』 7월 15일 기사에서 숙종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은 경흥부(慶興府)에 위리 안치(圍籬安置)하게 하고, 우의정 여성제(呂聖齊)는 경원부(慶源府)에 위리 안치하게 하였는데, 해도(該道)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배소(配所)에 도착하는 날짜를 장계(狀啓)로 알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좌의정은 실록 기사를 봤을 때 간찰의 내용처럼 유배를 간 기록은 없다.]과 부제학(副提學) 최석정(崔錫鼎)이 국문(鞠問)을 받는다는 사실[『조선왕조실록』 7월 14일 기사를 보면 숙종이 최석정을 나문(拿問)하라는 명을 내려 그를 조사하여 관직을 삭제하도록 하였다가 21일에 다시 그는 잘못이 크게 드러나는 일이 없어서 삭직(削職)하라는 명(命)을 거두는 하교를 내렸다]에 대해서 들었는데, 실제로 사실인지 묻고 이러한 일에 대해 놀라고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흥룡(興龍) 소상(小祥)이 지나가자 여양(驪陽) 대야(大爺)의 초기(初朞, 소상을 말함)이 또 임박하니 세월이 번개같이 흘러간다고 하였다. 아울러 붓과 먹이 다 떨어졌으니 여유분이 있으면 보내줄 것과, 납약(臈藥), 청소(淸蘇), 포룡(抱龍) 등의 약재도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추신이 있다.
<원문>
大霖之餘暑炎方酷不審此時
僉尊起居如何
別?尊舅症已得快復否恒切憧〃懷
思而地遠便阻書候亦斷只自勞夢而
已等衰病日甚常事枕席輝自前月
初重患脚腫兩處破濃月餘辛苦今
纔少完而眼疾兼劇尙在苦〃種〃憂惱
殆不可支吾仄聞首右兩揆忽被遠謫之
命而副學又有鞠問之事云未知果爾而所
?何事驚且鬱紆興龍小祥焂過而
驪陽大爺初朞且迫人事變嬗宲如電
忙窃想
僉尊疚懷益復自別千萬適逢官便草
此憑候不宣伏惟
僉下照謹拜上狀
戊辰七月卄二日 記末世振
世輝
筆墨絶之幸有 餘儲
惠投如何此則不厭其多
僉尊各加念惠也臈藥淸蘇抱龍等藥切
乞得之耳
이 편지의 수신자는 미상이다. 박세진(생몰년 미상, 본관 반남)·세휘(1625~?. 본관 반남) 형제는 상대방에게 무더운 날씨가 건강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들은 노병(老病)이 날로 심해서 늘 자리보전하고 있다. 더욱이 세휘는 지난달부터 다리에 종기가 나서 한달동안 고생하다가 이제야 조금 회복되었는데, 또 눈병까지 생겨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영의정과 우의정·좌의정이 갑자기 유배의 명을 받았다는 것[『조선왕조실록』 7월 15일 기사에서 숙종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은 경흥부(慶興府)에 위리 안치(圍籬安置)하게 하고, 우의정 여성제(呂聖齊)는 경원부(慶源府)에 위리 안치하게 하였는데, 해도(該道)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배소(配所)에 도착하는 날짜를 장계(狀啓)로 알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좌의정은 실록 기사를 봤을 때 간찰의 내용처럼 유배를 간 기록은 없다.]과 부제학(副提學) 최석정(崔錫鼎)이 국문(鞠問)을 받는다는 사실[『조선왕조실록』 7월 14일 기사를 보면 숙종이 최석정을 나문(拿問)하라는 명을 내려 그를 조사하여 관직을 삭제하도록 하였다가 21일에 다시 그는 잘못이 크게 드러나는 일이 없어서 삭직(削職)하라는 명(命)을 거두는 하교를 내렸다]에 대해서 들었는데, 실제로 사실인지 묻고 이러한 일에 대해 놀라고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흥룡(興龍) 소상(小祥)이 지나가자 여양(驪陽) 대야(大爺)의 초기(初朞, 소상을 말함)이 또 임박하니 세월이 번개같이 흘러간다고 하였다. 아울러 붓과 먹이 다 떨어졌으니 여유분이 있으면 보내줄 것과, 납약(臈藥), 청소(淸蘇), 포룡(抱龍) 등의 약재도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추신이 있다.
<원문>
大霖之餘暑炎方酷不審此時
僉尊起居如何
別?尊舅症已得快復否恒切憧〃懷
思而地遠便阻書候亦斷只自勞夢而
已等衰病日甚常事枕席輝自前月
初重患脚腫兩處破濃月餘辛苦今
纔少完而眼疾兼劇尙在苦〃種〃憂惱
殆不可支吾仄聞首右兩揆忽被遠謫之
命而副學又有鞠問之事云未知果爾而所
?何事驚且鬱紆興龍小祥焂過而
驪陽大爺初朞且迫人事變嬗宲如電
忙窃想
僉尊疚懷益復自別千萬適逢官便草
此憑候不宣伏惟
僉下照謹拜上狀
戊辰七月卄二日 記末世振
世輝
筆墨絶之幸有 餘儲
惠投如何此則不厭其多
僉尊各加念惠也臈藥淸蘇抱龍等藥切
乞得之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