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이예요.
조선시대 도읍지가 된 한양에서부터 서울특별시가 될 때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 모두 상설전시실로 서울여행을 떠나보아요.
새로운 나라 '조선'의 수도 '한양'은 조선의 심장 같은 곳입니다.
임금이 살고 있는 곳이자 백성들과 각 지방의 물품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니까요. 한양은 이에 걸맞은 도시로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국 지도로,
지도의 중심에는 한양도성이
크게 강조되어 그려져 있어요.
조선의 건국을 칭송한 시이자
한글로 만든 최초의 책입니다.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는 과정과
정당성 등이 기록되어 있어요.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이 살았던 동네가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전행랑, 피맛골 등 한양 중심가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 가장 큰 한양지도예요.
한양을 둗러싸고 있는 성벽과 산의 모양,
물길, 궁궐 등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요
광화문 앞 대로인 육조거리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등
국가의 중심 관청들이 있었어요.
한양 사람들의 신분증이에요.
한양에는 양반, 중인, 상민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았는데,
신분과 벼슬에 따라 호패에 쓰여진 내용과
만드는 재료가 달랐어요.
'시전'은 한양의 대표적인 상점가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번화한 거리라는 뜻에서 '운종가'로도 불렀어요.
조선시대 한강을 왕래하며
물품을 날랐던 배에요.
조선후기에는 서강과 마포,
용산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경강산업이 발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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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은 수선(首善), 즉 '으뜸가는 선'의 공간이었고, 이 절대적인
공간의 권위를 드러내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 한양도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의 공간과 유물을 살펴보았어요.
다음은 개항과 대한제국기의 서울로 떠나볼까요.
19세기 중반 서울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은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국 수도에 걸맞게 모습을 바꿔나갔고, 전차와 같은 신문물이 들어와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변해갔습니다.
서양 선교사가 서양 과학의 보급을 위해
중국에서 간행한 세계지도로,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관 확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해
덕수궁에서 큰 잔치가 열렸어요.
서양식 군복의 군인과 태극기,
제국을 상징하는 황색의 악대 복장 등을 통해
황제국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요.
근대 독립국가로서 대한제국에는
나라의 상징이 필요해졌어요.
고종은 1883년 태극과 4괘 도안의 기를 국기로 제정했는데
지금의 태극기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어요.
독립협회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으로,
민중들은 신문에 직접 목소리를 내며
근대적 정치의 주체로 성장해갔어요.
서양식 군복 차림으로
황제의 강한 권력을 드러내고 있어요.
고종은 1897년 조선을 '대한제국' 으로
바꾸고 근대화 사업에 박차를 가했어요.
덕수궁과 정동 일대는 대한제국의 주요한
정부 기관과 근대 시설,
서양식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어요.
새로운 첨단의 교통수단, 일상 생활용품들도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 전등 등이 도입되었고
석유등잔, 사진기, 유리거울 등도 보급되었어요.
서울의 중심대로였던 종로 거리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탑골공원 앞을 지나는
군악대를 볼 수 있고
전차 탑승과 신문물 체험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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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강대국의 식민지화를 위한 압력 속에서 자주적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살펴보았어요.
다음은 일제강점기의 서울로 떠나볼까요.
1910년, 강제로 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수도를 '경성부'로 격하하고 자신들이 통치하기 편리하게 서울을 바꿔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훼손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도시를 개발하였습니다.
한일병합 후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지배해 복종하게 만들었어요.
일반 관리와 학교 교사까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해 공포감을 조성했어요.
일본은 식민 통치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박람회를 개최하고 이를 안내하는
그림을 제작했습니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경복궁, 창경궁, 남산, 환구단 등이 파괴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서울은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독립선언서는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군중들과 함께 만세 행진을 이어갔어요.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에 들어온 인력거는
복잡한 도심 골목을 다니는
대중교통 중 하나였어요.
전차와 버스가 확대되면서
인력거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새로운 도시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말합니다.
단발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 모던걸,
양복에 맥고모자를 쓰고 회중시계를 찬 모던보이는 경성 거리를 활보했어요.
일본의 침략은 조선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어요.
경성의 사람들은 강제로 전쟁이 동원되고
물자를 빼앗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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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제강점기 국권을 빼앗긴 시기의 서울과, 서울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근대 문물들을 보았어요.
다음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떠나볼까요.
나라를 되찾은 후 '경성'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서울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폐허 속에서도 서울은 주거, 도로, 교통문제를 해결하며 거대한 현대 도시, 세계가 주목하는 역동적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전쟁과 인구증가로 가난했던 당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 절약 캠페인을 벌였어요.
서울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 남쪽 지역('강남')을 개발하였습니다.
서울은 '강남'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어요.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가 함께 있는 상가단지가 도심 한가운데 세워졌어요.
이러한 건물들은
서울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어요.
1980년대 아파트의 대표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서울 인구가 급증하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많이 지어졌어요.
서울올림픽은 수도 서울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국제도시로
성장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어요.
올림픽을 준비하며 서울의 모습도
크게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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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부터 지금까지 서울이 역동적인 도시로 성장해 온 모습을
알 수 있었어요.
조선시대의 서울부터 현재의 서울까지 600년 서울여행이 마무리 되었어요.
여행을 마무리할 겸 간단한 퀴즈를 풀어볼까요?
정답을 모두 맞췄어요. 참 잘했어요.
문제가 틀렸어요.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