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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백화점_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상세내용은 본문 참조)

화신백화점_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전시기간
2021-07-23 ~ 2022-03-20
전시장소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
담당부서
도시유적전시과

전시소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바로 앞에는 종로타워가 서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육의전 중 으뜸이었던 선전縇廛이 있었으며, 반세기를 넘게  종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던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입니다.

화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요즘의 사람들에게 종로타워 역시 종로의 랜드마크입니다. 육의전의 선전, 화신, 종로타워-. 이 모두는 한양의, 경성의, 서울의 '상업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건물은 사라졌지만, 장소가 가지고 있는 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화신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또한 지속되고 있습니다. 화신은 여전히 수많은 서울사람들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이번 전시는 화신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소개합니다.

 

파트 1. 지금은 백화점 전성시대

일제강점기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930년의 경성은 실로 백화점 시대다.”

인구 30만 명[1930년대 기준]의 경성에는 자그마치 5개의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히라타平田, 미나카이三中井, 죠지야丁子屋, 미츠코시三越 그리고 화신和信이 바로 이 시대의 주역이었습니다.

백화점 시대는 일본의 오복점吳腹店[포목점]들이 대형 백화점으로 변화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남촌[현재의 충무로와 명동 일대]의 일본계 백화점들은 사세를 확장하며 대형화되었습니다. 북촌에는 최남崔楠에 의해 건립된 동아백화점, 상회에서 백화점으로 거듭난 화신백화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화신이 동아백화점을 인수하면서, ‘조선인이 세운 유일한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선인 상권의 상징인 종로,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 선 화신은 그야말로 ‘민족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파트 2. 1937년, 화신의 새로운 탄생

지하 1층에서 지상 6층에 달하는 크림색 건물이 경성의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 섰습니다. 1935년 화재로 서관西館이 전소되자, 더욱 크고 화려하게 신관新館을 새로 지어올린 것입니다. 건물 위에는 네온사인이 쉬지 않고 빛나 경성 어디에서나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이 65척[약 19m]의 전광판은 경성 시내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한편 동아백화점 인수 후 화신의 매장으로 이용됐던 동관東館은 반소半燒된 이후, 5층으로 증축되어 신관과 나란히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화신은 대형 건축물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타 백화점들도 그랬듯, 화신 안은 당대 최신 문화의 기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화신에는 이를 소비하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화신 또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고객 유치에 힘썼습니다. 민족백화점의 이름을 걸고 타 백화점들과 본격 경쟁에 들어간 것입니다.

화신이 고객 유치를 위해 가장 주력했던 것은 '민족 마케팅'이었습니다. '민족 유일의 백화점'이라는 수사는 치열한 백화점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화신과 화신의 사장 박흥식은 주요 기업, 재계 인사로서 식민지배 체제와 총독부의 정책에, 때에 따라 부응할 수 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민족의 백화점'이라는 통칭은 생각보다 더 많은 그림자를 안고 있었습니다.

 

파트 3. 저물어가는 화신의 시대

해방이 다가올 무렵, 경성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백화점들도 생필품 판매에 주력하거나, 전쟁 홍보 전람회를 개최하는 등 전시상황에 부응하였습니다. 화신은 군수회사인 비행기 제조회사까지도 설립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제에 협력한 일로 박흥식은 반민특위 체포 제 1호로 검거되기도 하였습니다.

화신의 전성기는 빠르게 지나고 있었습니다. 6.25때 불타 뼈대만 남았던 건물이 이를 암시하는 듯 했습니다. 이후 1955년 신신백화점[현 종로 SC제일은행 자리]을 만들어 화신과 함께 백화점 사업을 다시 일으켜 보려했던 노력은 최신 시설을 갖춘 백화점들의 등장으로 점점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백화점 일부를 임대해 사용했던 ㈜신생이 1967년 건물 일부를 인수하면서 백화점의 주인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1980년 모기업인 화신산업은 부도로 도산하였고 백화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신 소유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이곳은 화신백화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화신의 시대는 힘을 잃어갔지만, 그럼에도 화신이 가지고 있는 세월의 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를 기억하며

1987년 3월 14일 화신백화점 건물[신관]이 헐리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문을 연 지 5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 종로의 상징이었던 화신은 도시재개발 및 종로확장계획과 맞물리면서 그 운명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자리에 종로타워가 들어서면서, 종로 한복판에 백화점이 있었음을 알리는 흔적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화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화신백화점의 시계 밑에서 동동거리며 약속 상대를 기다리던 그 날. 건물 안 물건들을 보며 즐거워하였던 그 날. ‘화신 앞’ 정거장에서 내려 종로를 지나던 그 날. 우리의 추억들이 모여 더 이상 볼 수 없는 화신의 잔상을 그려냅니다. 화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종로의 랜드마크입니다.

 

“식민지시기 대표적인 조선인 건축가 박길룡의 작품 중 하나인 화신백화점은 단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다. ‘조선인의 거리’인 종로 2정목 종각 맞은편에 자리한 그것은 당대 미츠코시나 죠지야 등의 일본계 백화점들과 경쟁한 유일한 ‘민족 백화점’이었으며, 해방 후 철거될 때까지 수많은 시민들의 ‘서울살이’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오늘날 그 자리에는 아메리카인이 설계하고 거대 재벌의 금융회사가 소유한 이국적인 고층 빌딩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여기에서 21세기 초국적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무엇을 읽어낼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게 될까?”

염복규, 「민족과 욕망의 랜드마크-박흥식과 화신백화점」, 『도시연구』 6, 2011년.

 

 

첨부파일
화신백화점.jpg (110 KB, image/jpeg, 다운 512 회)
서울역사박물관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