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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960년대 학교 통지표

- 통지표로 보는 격동기 학기제의 변동 -

 

 

학교에서는 한 학기를 마치면 통지표를 나눠준다. 예전에는 초등생들도 가슴을 졸이면서 받게 되는데 이는 그 시기 초등학교 통지표에도 한 학기의 성적이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적 이외에도 월별로 출석일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담임에게는 출결관리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1940~60년대에는 일제강점기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그들 정권의 이념에 맞는 학기제를 적용하면서 개정에 개정을 거듭했다. 여기에다 법령을 새로 제정해나가면서 거기에 동반되는 일정 기간이 요구됨에 따라 과도기의 학기제도 몇 차례나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정상적인 학기제 적용이 어려워 유예 기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의 학기제는 격동기와 함께하며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4월에 1학기를 시작해서 이듬해 3월에 끝나는 3학기제를 운영했다. 해방 후 미군정기가 되어서는 미국의 체제에 따라 9월에 새 학기를 여는 2학기제로 바꾸었다. 이후 우리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는 4월 신학기제로 바꾸었다가 다시 3월로 변경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러한 학기제의 변화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통지표’를 통해 보면, 그 현황을 시각적으로 잘 확인할 수 있다. 통지표에는 학생들의 학기별 학과 성적, 매월 출석일수 등을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한 학기의 시작과 방학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 일제강점기, 4월에 개학하는 1년 3학기제

 

삼산학교 통지표(1943년, 서기 7145)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제도에 따라 4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에 끝나는 1년 3학기제를 운영했다. 1943년 초등과정에 해당하는 삼산학교(三山學校) 1학년 통지표를 보면, 1학기~3학기 동안의 학기별 학업성적 및 출석상황이 기재되어 있다[자료 1]. 학업성적(學業成績) 란에는 제1학기(第一學期), 제2학기(第二學期), 학년말(學年末)로 구분해서 성적을 매기고, 출석상황(出席狀況) 란에는 4월(四月)~8월(八月), 9월(九月)~12월(十二月), 1월(一月)~3월(三月)로 구분하여 출석일수와 결석일수를 기재했다. 3학기제로 운영해서인지 위의 표에 의하면 방학을 해도 등교하지 않고 통째로 쉬는 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에 방학은 ‘보통학교규칙’으로는 하계방학이 7~8월에 걸쳐 1개월 이상, 동계방학은 12월말~익년 1월 초에 1주일, 봄방학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1주일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실제 출석 일수를 보면 시기에 따라 혹은 학교 사정 따라 당시 실정에 맞게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자료 1_서기7145 4/4] 1943학년도(1943.4.~1944.3.) 삼산학교 1학년 통지표 ‘출석일수’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출석일수

24

25

25

16

 

20

25

26

27

25

21

 

235

결석일수

 

 

 

 

 

 

 

 

 

 

 

 

 

 

 

해방 직후, 9월에 개학하는 학기제 모색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은 9월을 기하여 초등학교를 개교하도록 했다. 미국식 학기제를 적용한 것이다. 미군정에서는 그해 9월 17일 ‘일반명령 제4호’를 통해 공립 초등학교는 9월 24일 개학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후 미국식 교육제도의 제정을 추진해나갔는데 최종 결정은 12월에야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1945학년에는 9월에 1학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 학년도까지는 일본식 3학기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45학년도 경성봉래공립국민학교 6학년 통지표를 보면[자료 2], 일제강점기의 통지표와는 완연히 다른 양식이 눈에 띈다. 먼저 소화라는 연호가 사라지고 서기인 ‘1945년도(一九四五年度)’를 기재했다. 또한 학교장, 담임, 학생의 성명은 모두 창씨개명에서 풀려난 우리 이름으로 기재했다. 그런데 통지표의 양식은 옛날 그대로이다. 학업성적 란은 3학기제이고, 출석상황 란은 4월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담임은 9월부터 1학기 출석일수를 기재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3학기가 끝나는 7월까지 기록해나간 것이다. 얼핏 보면 4월에 학기를 시작한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기에 유념해서 봐야한다.

 

[자료 2_서49953] 1945학년도(1945.9.~1946.7.) 경성봉래공립국민학교 6학년 통지표 ‘출석일수’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출석일수

26

27

25

4

 

6

26

24

20

10

19

25

212

결석일수

 

 

 

 

 

 

1

 

 

 

 

 

1

 

새 학기의 첫 달인 9월을 보면, 출석일이 6일에 불과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미군정 ‘일반명령 제4호’에 의거해 9월 24일(월)에 등교하여 그 달 29일(토)까지 6일간만을 출석했기 때문이다. 이 학년도에 1학기는 9월~12월, 2학기는 이듬해 1월~3월, 3학기는 4월~8월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 7월 출석일은 4일에 불과했다. 이유는 6학년이었던 이 통지표의 학생이 당국의 방침에 따라 7월 초에 졸업하는 바람에 수업 일수가 적었던 것이다. 이 통지표에는 1945년도 미군정 첫해에 9월에 학기를 시작하면서도 이전의 3학기제를 따른 실제 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다.

 

 

1946~1948년 9월에 개학하는 2학기제 운영

 

1946년도 서울돈암공립국민학교 4학년 성적통지표를 보자[자료 3]. 여기에는 통지표의 양식이 정상적으로 9월부터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1학기는 9월 초순에 수업을 시작하여 12월 중순에 겨울방학에 들어갔다가 2월에는 다시 수업을 시작하여 1학기를 마친다. 2학기는 이듬해 3월 초에 시작해서 7월 말에 끝내고 여름방학을 하였다. 그런데 이해에 출석일수를 보니 무려 235일나 된다. 당시에는 토요일도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에 출석일수가 매우 많았던 것이다. 참고로 요즘 법정 수업일수는 190일이다. 이 일수는 2012년 ‘주5일근무제’가 결정되면서 정해진 날짜인데 그 이전 주6일제 근무일 때는 220일이었다. 그렇다면 235일은 예전의 법정 기준일로 봐도 많이 초과하여 등교한 것이다. 정말 열심히 학교에 다녔을 학생의 모습이 느껴진다.

 

 

 

[자료 3_서기7144 4/7] 1946학년도(1946.9.~1947.8.) 서울돈암공립국민학교 4학년 통지표 ‘출석일수’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출석일수

24

25

25

16

 

20

25

26

27

25

21

 

235

결석일수

 

 

 

 

 

 

 

 

 

 

 

 

 

 

 

1949년 4월에 개학의 신학기제 모색 2학기제 운영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는 9월 학기제에 대한 비판과 개정논의가 일어났다. 4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자는 논의였다. 4월은 당시 한해의 회계연도가 시작된다는 점, 또한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라는 점 등을 이유로 4월 학기제가 유력해졌다. 그리하여 1949년 2월에 문교부에서 4월 학기제 개정안을 마련하여 3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10월에는 국회 문교사회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다. 따라서 이듬해인 1950~51년에 한하여 임시조치가 필요했다. 먼저 이미 시작된 1949학년도 일정을 축소하여 5월에 끝내며, 1950학년도는 6월에 신학기를 시작하여 이듬해 3월에 마치기로 하고, 1951학년도부터는 개정안대로 4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기로 계획했다. 그리하여 일단 1949학년도 수업일은 ‘1949년 9월 ~ 1950년 5월’이 되었다. (1949학년도~1951학년도 3년간의 성적표는 해당 유물을 찾기 못한 관계로 부득이 실물을 소개하지 못한다.)

 

 

1950년 6월 1일 개학, 그러나 그달 6.25 전쟁이 일어나고. . . 

 

1950학년도에는 계획대로 6월 1일에 신학기를 맞이했는데 바로 그달 25일에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전쟁통에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새로운 학기제의 시행에도 차질이 생겼다. 수업 일정은 미루어져서 이듬해 8월에 가서야 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결국 1950학년도 일정은 예정보다 많이 늘어나서 ‘1950년 6월 ~ 1951년 8월’이 되었다. 1951학년도에는 9월에 새 학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듬해 4월의 개학을 기약하기 위해 1952년 3월에 일찍 학년을 마쳤다. 따라서 1951학년도 수업일은 ‘1951년 9월 ~ 1952년 3월’이 되었다.

 

 

※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일화

 

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 그의 프로필에서 학력은 서울대 국어국문학 중퇴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그는 1950년 5월에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6월에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달 새 학년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중순경에야 입학식을 했단다. 결국 강의도 며칠 못 듣고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의 학창시절도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 학력은 전란 중의 생활전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52년 4월에 개학하는 2학기제 정착

 

1952년에는 전쟁 중임에도 많은 학교가 4월에 개학했다. 이해 5월 대통령령으로 ‘교육법시행령’이 제정되어 ‘제1학기는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제2학기는 10월 1일부터 익년 3월 31일까지’로 규정했다. 1952년 전쟁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받은 성적표이다[자료 4]. 더구나 1학년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딱 하루만 결석했으니 놀라운 일이다. 전시 상태인지라 수업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이 통지표의 기증자(김현무)의 증언에 따르면 전쟁통에 책상과 걸상이 다 없어진 교실에서 그냥 맨바닥에서 피난 온 아이들까지 더해져서 빼곡히 앉아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석일수는 242일이나 되었다. 전쟁 중임에도 아동들의 대단한 학구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자료 4_서기4959] 1952학년도(1952.4.~1953.3.) 서울청계국민학교 1학년 통지표 ‘출석일수’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총계

출석일수

22

26

25

22

13

7

26

25

21

7

24

24

242

결석일수

 

1

 

 

 

 

 

 

 

 

 

 

1

 

 

1962년부터, 3월에 개학하는 2학기제

 

4월 학기제가 시행되는 와중인 1950년도 후반부터 또다시 3월 학기제가 논의되었다. 3월에 학기를 시작하면 학기 도중에 겨울 방학을 해야 하는 비효율성을 피하는 점, 개학 후 한 달쯤 지난 4월에는 본격적인 학습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2월에 방학에 들어가 월동비를 절약할 수 있는 점 등으로 3월 학기제가 논의되었다. 그리하여 1961년 7월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3월 학기제가 완성되었다. 다소 늦은 시기이지만 1971년도 통지표에 3월~7월, 9월~익년 2월까지 출석일수가 적혀 있다[자료 5].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3월 학기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통지표에는 교과성적이 수, 우, 미, 양, 가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학생은 두 학기 모두 올 ‘수’를 받은 우등생이다. 지금까지 5장의 통지표를 보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3월 학기제’는 일제강점기부터 수십 년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착한 제도였음을 알았다.

 

 

 

 

 

[자료 5_서49965] 1971학년도(1971.3.~1972.2.) 충암국민학교 5학년 통지표 ‘출석일수’

 

3월

4월

5월

6월

7월

9월

10월

11월

12월

2월

총계

출석일수

26

24

25

26

16

26

25

25

19

16

228

결석일수

 

 

 

 

 

 

 

 

 

 

 

 

(작성자: 김문택 학예연구사)

 

 

<참고자료>

김성혜, 「학기제 변천과정 연구」, 『교육사상연구』, 한국교육사상연구회, 2005

김상훈, 「해방 후 학기제 변천과정 검토」, 『한국교육사학』, 한국교육사학회, 2002

「다문화칼럼 함께하는 세상 : 봄 학기제와 가을 학기제」 (세계일보, 2020.05.27.)

「국제이슈 : 코로나19로 이슈된 ‘학기제’, 왜 국가마다 다를까」(아시아경제, 20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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