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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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은 천호대교와 광진교를 포함하여 동쪽으로 명일동과 길동, 남쪽으로 성내동, 북쪽으로 암사동과 인접한 지역이다. 천호대교와 이어진 천호대로는 동부간선도로와 교차하고 중부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천호동은 서울 동남부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의 중심지라는 천호동의 정체성은 조선시대 광나루(광진廣津)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목(廣州牧)에 속했던 천호동은 당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던 광나루가 있어 사람과 물자가 붐비는 곳이었다. 1936년 광나루 일대에 광진교가 건립되면서 천호동은 서울의 도심과 강동 지역을 잇는 관문이 되었고,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천호동은 1970~1980년대에 천호대교와 천호대로가 개통되고 다수의 주택지와 시장, 상가, 백화점 등이 조성되면서 교통의 거점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의 개통으로 천호동의 교통망과 상권은 더욱 팽창하였고 현재는 천호 신사거리를 중심으로 발전과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천호동은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인 만큼 독특한 공동체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천호동 텍사스’라고 불리는 유흥업 집성촌,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국가 유공 전상자들이 모여 사는 ‘십자성 마을’, ‘문구·완구 거리’, ‘장미골목’ 등이 천호동에 공존한다. 이러한 특색들은 천호동의 공간과 지역의 변화를 규명 짓는 주요 요소이자 정체성이다.
교통의 중심지라는 천호동의 정체성은 조선시대 광나루(광진廣津)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목(廣州牧)에 속했던 천호동은 당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던 광나루가 있어 사람과 물자가 붐비는 곳이었다. 1936년 광나루 일대에 광진교가 건립되면서 천호동은 서울의 도심과 강동 지역을 잇는 관문이 되었고,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천호동은 1970~1980년대에 천호대교와 천호대로가 개통되고 다수의 주택지와 시장, 상가, 백화점 등이 조성되면서 교통의 거점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의 개통으로 천호동의 교통망과 상권은 더욱 팽창하였고 현재는 천호 신사거리를 중심으로 발전과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천호동은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인 만큼 독특한 공동체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천호동 텍사스’라고 불리는 유흥업 집성촌,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국가 유공 전상자들이 모여 사는 ‘십자성 마을’, ‘문구·완구 거리’, ‘장미골목’ 등이 천호동에 공존한다. 이러한 특색들은 천호동의 공간과 지역의 변화를 규명 짓는 주요 요소이자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