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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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은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 성저십리에 속한 한적한 농촌지역입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유학자이자 풍수지리가였던 하륜河崙에 의해 도읍지 후보로 거론될 만큼 풍수적으로 길지임을 확인 받아 조선왕조의 관심지역으로 남아 있으면서 이궁離宮인 연희궁衍禧宮과 궁궐에서 소요되는 옷감을 공급하기 위한 잠실蠶室이 설치되었습니다.
1918년 연희전문학교의 새 캠퍼스가 조성되고 1920년 경의선 신촌역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동네 신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1935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도 이전하였으며 1936년 경성부 행정구역의 확장으로 신촌이 경성부에 편입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면서 현재 신촌의 도시기반시설이 조성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신촌은 학생들과 지방에서 상경한 서민들이 몰려들었고, 교통로 발달 및 지하철 2호선의 영향으로 서울의 부도심으로 급부상하였다. 특히 1970~90년대에는 문화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사회운동가들의 집결지로서 신촌은 새로운 문화의 유입통로이자 중심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상권의 대형화로 기존 도시조직이 지워지고, 한편으로 대학 문화가 위축되면서 지역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청년문화의 산실이자 서울의 대표적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신촌의 시기별 변화와 현재 신촌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현상을 심도 있게 관찰하였으며, 흔들리고 있는 신촌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담았다.
1918년 연희전문학교의 새 캠퍼스가 조성되고 1920년 경의선 신촌역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동네 신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1935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도 이전하였으며 1936년 경성부 행정구역의 확장으로 신촌이 경성부에 편입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면서 현재 신촌의 도시기반시설이 조성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신촌은 학생들과 지방에서 상경한 서민들이 몰려들었고, 교통로 발달 및 지하철 2호선의 영향으로 서울의 부도심으로 급부상하였다. 특히 1970~90년대에는 문화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사회운동가들의 집결지로서 신촌은 새로운 문화의 유입통로이자 중심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상권의 대형화로 기존 도시조직이 지워지고, 한편으로 대학 문화가 위축되면서 지역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청년문화의 산실이자 서울의 대표적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신촌의 시기별 변화와 현재 신촌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현상을 심도 있게 관찰하였으며, 흔들리고 있는 신촌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