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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수산장

은사수산장 이미지

1910년 강제합병 이후 일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빈곤과 배일감정을 해소하여 조선 사회를 안정시키고 통치기반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임시은사금(臨時恩賜金)을 지급하여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의 민심을 회유하고자 했다. ‘황실의 하사금’을 의미하는 은사금을 일본의 천황이 조선에 지급한다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행위였다. 조선총독부는 임시은사금의 이자수입을 기반으로 임시은사금사업을 시행했는데, 무엇보다도 수산(授産)과 교육에 공을 들였다. 직업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양잠이나 기업(機業, 베짜기) 등을 가르쳐 안정적인 직업을 갖도록 했으며, 이로써 생활의 안전을 얻으면 치안 확보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임시은사금은 전국의 부(府)와 군(郡)에 배분되었는데, 수산사업의 경우 크게 보통농사, 잠업, 임업, 축산업, 기업, 수산업, 광업 등의 사업이 지역 사정에 따라 실시되었다. 수산사업은 선정된 사업 종류에 따라 강습소나 전습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수산장(授産場)을 설치되어 여러 개의 실습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기도 했다. 경기도에는 경성은사수산장을 포함, 9개의 은사수산장이 설치되었다. 일종의 직업훈련원이었던 경성은사수산장은 1911년 현 운니동 98번지 삼환기업 자리(금위영 터)에 들어섰으며, 1925년 화재로 소실되자 이듬해인 1926년 그 자리에 이왕직아악부가 옮겨왔다.

이 컬렉션에는 경성은사수산장에서 양잠 및 기업 훈련을 받은 모습과 전습소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연감과 홍보용 사진첩에 반복적으로 실린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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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 은사수산 제사장
  • 경성 은사수산 제사장
  • 경성 은사수산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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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사수산 경성기업장과 강원도기업전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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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사수산장 훈련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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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사수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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