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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한양도성은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태조 5년(1396)에 축조되었다.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된 이후 세종과 숙종 대 등 여러 차례 개축과 수축을 거쳤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 숙정문(肅靖門, 북대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惠化門, 동소문) · 소의문(昭義門, 서소문) · 광희문(光熙門, 동소문) · 창의문(彰義門, 북소문)인데 현재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한양도성은 근대화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차례로 성문과 성벽이 훼철되었다. 1898년 청량리-서대문 간 전차부설로 흥인지문과 돈의문 주위의 성곽이 헐렸고, 숭례문은 1899년 종로-용산 전차 개통과 1907년 일본 요시히토(嘉仁親王, 훗날의 다이쇼 천황) 황태자의 한국 방문 당시 황태자 일행이 통과하기 좁다는 이유로 좌우의 성벽이 잘려나갔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도시로의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1914년과 1915년에 소의문과 돈의문이 헐렸으며, 1915년에는 광희문이 붕괴하였다. 1925년에는 조선신궁과 경성운동장 건축을 위해 주변 성벽이 헐렸고, 1928년과 1938년에는 혜화문의 문루와 성벽이 차례로 훼철되었다. 일제강점기 숭례문, 흥인지문을 비롯한 한양도성 사진은 회엽서(그림엽서), 입체사진, 각종 인쇄물과 홍보물에 사용되어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문명화를 이루었다는 식민주의 사관을 시각화하는 매체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