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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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 왕십리
왕십리는 조선시대에 지리적으로 동대문 밖 성저십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된 지역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차와 기동차 노선의 부설과 교외 지역의 성장 속에 공장지대로 변모하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지방민의 집단 이주와 더불어 서울 도심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가내공업지대로 그 모습을 변형하며 역사적 층위를 형성해 왔습니다.
이러한 도시 서울의 형성과 성장의 역사를 적층하고 있는 왕십리 지역은 뉴타운 개발로 인해 그 흔적들이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조사 당시(2009) 왕십리 뉴타운 지역에는 왕십리 지역의 시대적 지층을 상징하는 잔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동대문·광희문과 동남방 지역을 연결하던 교통로가 전차가 다니면서 난 왕십리길 아래 살아있었으며, 뉴타운 지역 곳곳에 일제강점기 공장 건물이 자리를 지키며 당시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농촌에서 이주해 도시를 구성한 지방 이주민들의 판잣집들과 1970년대 제조업의 성장 발전을 상징하는 금형 제조업과 봉제 가공 공장이 곳곳에 남아 그 역사를 대변합니다.
이러한 도시 서울의 형성과 성장의 역사를 적층하고 있는 왕십리 지역은 뉴타운 개발로 인해 그 흔적들이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조사 당시(2009) 왕십리 뉴타운 지역에는 왕십리 지역의 시대적 지층을 상징하는 잔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동대문·광희문과 동남방 지역을 연결하던 교통로가 전차가 다니면서 난 왕십리길 아래 살아있었으며, 뉴타운 지역 곳곳에 일제강점기 공장 건물이 자리를 지키며 당시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농촌에서 이주해 도시를 구성한 지방 이주민들의 판잣집들과 1970년대 제조업의 성장 발전을 상징하는 금형 제조업과 봉제 가공 공장이 곳곳에 남아 그 역사를 대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