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양도성의 훼손과 재탄생
한양도성의 훼손
오래된 성곽 도시들에게 근대화란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 공간이 성벽 밖으로 팽창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하여 도로가 신설·확장되며, 신무기 개발로 인해 성벽의 군사적 가치가 감소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의 성벽이 근대화 과정에서 헐렸고 한양도성 역시 근대 도시 성곽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서울의 근대 도시화는 외세의 침탈과 맞물려 있었다. 한국을 강점한 일본은 평지의 성벽을 조직적으로 허물었으며, 수백 년 간 서울의 상징 구실을 한 성문들을 철거하거나 방치하였다. 일본 신토(神道) 사원인 조선신궁을 건립하면서 남산 일원의 성곽을 훼손했고, 경성운동장을 지으면서 동대문 주변의 성곽을 무너뜨렸다. 한양도성은 존엄한 땅을 표상하는 상징물에서 망국의 아픔을 드러내는 폐허로 바뀌었다.
한양도성, 소생하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는 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담을 수 없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성벽이 도시 발전을 방해하는 낡은 시대의 잔재로 인식된 것은 보편적인 시대 현상이었다. 전 세계 역사도시들의 성벽이 헐렸고 한양도성 역시 중세 성곽의 숙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평지에 건설된 다른 수도 성곽들과는 달리, 한양도성은 자연과 한 몸으로 축조되었기에 많은 부분이 온존될 수 있었다. 질풍노도와 같은 근대화의 시기를 지난 이후, 민족적 전통이 담긴 이전 시대의 유물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양도성 역시 한국과 서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념비적 유산으로 재발견되어,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담은 구조물로 소생했다. 원 모습대로 복원하겠다는 서툰 태도가 오히려 진정성을 훼손한 사례가 적지 않았으나, 한양도성은 그 상처마저도 미래 세대에 전승할 교훈으로 품은 채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새 시대의 표상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