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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초등학교 통지표 속 ‘황국신민화’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교육과정은 일본식으로, 언어는 일본어로 이루어졌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초급교육기관에서도 물론 그러했지요. 우리박물관 유물 중에는 당시 한 학생이 1942학년도(소화17년도)~1945학년도(소화20년도)에 학교에서 받았던 통지표 네 장이 있습니다(서기7145). 한 장은 경신학원(京新學院) 것, 세 장은 삼산학교(三山學校) 것입니다.(이중에서 1944학년도 삼산학교 2학년 것을 대표 이미지로 소개함)
이때의 통지표에는 학기(3개 학기) 별로 학생의 성적과 출석일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45학년도에는 1학기(4월~6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해 8월에 해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달에 해방이 되면서 일본식 교육도 끝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일제 말기였던 당시의 교육 중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황국신민화’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을 일본 황국의 신민(臣民), 즉 신하와 백성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등생의 통지표에도 그 의도가 잘 드러나는데요. 바로 ‘황국신민서사’와 일제 ‘국가기념일’을 가장 잘 보이도록 표기해두는 것이었습니다.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통지표의 표지 정면에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즉 황국신민의 맹세가 적혀 있습니다. 초등생에게도 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하는 글이지요. 거기에다 그 초등생의 학부형들도 함께 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원문, 번역한 글은 이렇습니다.
皇國臣民ノ誓詞
一 私共ハ 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
二 私共ハ 心ヲ合セテ 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
三 私共ハ 忍苦鍛鍊シテ 立派ナ强イ國民トナリマス
황국신민의 맹세
1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당시 황국신민서사는 아동용과 성인용이 있었는데요. 바로 아동용입니다. 이 내용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기획하여 작성하였는데요. 당시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인 김대우(金大羽)란 자가 주도하여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이각종(李覺鍾)에게 문안을 만들게 해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적극 협력한 역사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용은 황제국의 신민으로 충성을 다하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천 년간 일본과는 다른 민족이자 다른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예로부터 역사도 다르고, 문화와 전통도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는 그걸 죄다 무시하고 자기네 것을 강요한 것이지요. 더욱이 당시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부터 전통적인 유교문화 이외에도 기독교와 같은 서양의 종교도 들어와서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유행했던 시기였는데요. 이런 지역에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이 역사를 거꾸로 돌려서 천황을 신격화하는 모순적인 정책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이런 정책은 식민지 조선에 맞지 않을뿐더러 일본 자국에게도 이롭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일제의 국가기념일
통지표의 다른 한쪽 면에는 일제의 국가기념일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삼일절, 광복절 등 국경일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일제 때에 이 날들은 일요일과 함께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학생들은 쉬지도 못하고 관련 행사에 참여하도록 강요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통지표에는 이런 날들을 경축일[祝日], 큰 제삿날[大祭日], 기념일(記念日)이라고 표기했습니다.
祝日(경축일), 大祭日(큰 제삿날), 記念日(기념일)
01월 01일 新年(신년) 새해
01월 03일 元始祭(원시제) 천황제의 시작을 기념해 천황이 직접 지내는 제사일
02월 11일 紀元節(기원절) 진무(神武) 천황의 즉위 기념일, 건국기념일이라고 함
03월 10일 陸軍記念日(육군기념일) 러일전쟁에서 펑텐(奉天) 전투 승리 기념일
3월 21일경 春分日(춘분일) 春季皇靈祭(춘계황령제)
춘분을 맞아 천황이 역대 천황을 기리는 제사일
04월 03일 神武天皇祭(신무천황제) 진무(神武) 천황에 대한 제사일
04월 29일 天長節(천장절) 천황(히로히토) 탄생일
05월 24일 開校(創立)記念日(개교(창립)기념일)
05월 27일 海軍記念日(해군기념일) 러일전쟁에서 쓰시마 해전 승리 기념일
9월 23일경 秋分日(추분일) 秋季皇靈祭(추계황령제)
추분을 맞아 천황이 역대 천황을 기리는 제사일
10월 01일 朝鮮總督府始政記念日(조선총독부시정기념일)
조선총독부가 통치를 시작한 기념일
10월 17일 神嘗祭(신상제) 천황이 햅쌀을 신궁에 바치는 제사일
11월 03일 明治節(명치절) 메이지유신 기념일(메이지 천황 탄생일)
11월 23일 新嘗祭(신상제) 천황이 햇곡식을 천지의 신에게 바치는 제사일
12월 25일 大正天皇祭(대정천황제) 다이쇼(大正) 천황에게 기일제 지내는 날
위 내용을 보면 당시 일본은 신의 나라이자 군국주의 나라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신에게 제사 드리는 풍습은 요즘에도 그 전통이 충실히 이행되는데요. 이런 제사문화는 ‘마쓰리(祭り)’라고 해서 요즘도 일본 각지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사상과 문화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이러한 정책들은 우리에게 결국 반일 감정의 씨앗을 뿌리고 싹 트여 키우는 역효과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를 이어서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반일감정은 전적으로 일제의 유산인 것입니다.
※ 우리에게도 익숙한 천장절
그런데 위의 날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도 있는데요. 바로 4월 29일 천장절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이날은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본 고위 장성 등 요인들에게 폭탄을 투척한 날입니다. 폭탄이 떨어진 장소는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인 천장절 겸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을 위해 마련된 행사장이었습니다. 당시 윤봉길 의사의 폭탄은 직접적으로 일본 요인들을 향했는데 더 나아가 일왕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통지표의 주인 박영민(1936~) 선생님
이 통지표의 주인은 바로 해당 유물을 직접 기증해주신 박영민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1942년 4월 만 6세의 어린 나이에 경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일제 때에 학교는 3학기제로 1학기는 4~8월, 2학기는 9~12월, 3학기는 이듬해 1~3월이었어요). 이후 이듬해 3월까지 정해진 과목을 충실히 이행하여 학년을 마쳤습니다. 이수과목은 수신(修身), 국어(國語), 산수(算數), 체조(體操), 음악(音樂), 도화(圖畫), 공작(工作) 등으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름은 일본식으로 청산충웅(靑山忠雄)이었습니다. 우리식 이름으로는 학교를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듬해인 1943년 4월에 삼산학교 1학년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 학교에서도 수신, 국어, 산수, 체조, 음악, 도화, 공작을 배웠습니다. 이전 학교와 같은 과목이었습니다. 이어서 1944년 4월에 2학년으로 올라갔고, 1945년 4월에는 3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어 일제가 쫓겨나는 바람에 4월~6월 1학기만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그해 11월에 경성돈암공립국민학교 3학년으로 다시 들어가서 2학기와 3학기를 마쳤습니다. 물론 이때에는 박영민이라는 본래의 이름도 찾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김문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