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대한제국기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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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서 근대의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대한제국기의 서울!
- 자주적 개혁에 대한 노력과 강대국의 식민지화를 위한 압력 속에 서양의 문물들과 생활 양식들이 전해지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서울, 그 서울의 변화되는 모습들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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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 문을 열다
- 1876년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후 미국, 러시아 등 여러나라들과 통상관계를 맺었습니다. 이후 서울에 머물러 사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서양식 의복과 신발의 소비가 대폭 늘어나면서 서울은 신문물의 전시장이 되었습니다. 신문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호기심과 놀라움, 감탄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19세기 중반부터 서울에는 변화의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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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심장 정동
- 1897년 고종은 나라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고종은 옛 것을 근본으로 삼고 새 것을 참작한다는 뜻의 '구본신참' 정신으로 서울을 새로운 도시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고 근대적인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경운궁에는 서양식 건물이 많이 들어섰고, 러시아, 프랑스 등 각국 공사관과 신식학교들이 모여 있던 정동은 서울의 새로운 심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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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의 거리 종로
- 1896년 가을, 정부는 서울의 중심 길이었던 종로와 남대문로에 있던 상업용 임시건물들을 없애고 거리풍경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원각사 터에는 근대적 공원을 만들었으며, 큰 길을 따라 전차가 다니는 길, 전봇대, 가로등을 설치하였습니다. 점차 서양식 건물들이 늘어갔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근대 문명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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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의 꿈
- 서울 곳곳에는 환구단, 독립문, 탑골공원 팔각정 등 나라의 자주 독립과 황제의 존엄성을 표현한 상징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한성전기회사, 한성은행 등 기업들의 서양식 건물도 점차 늘어났습니다. 대한제국은 서울을 전통과 근대가 함께하는 도시로 만들려 하였으나, 일제는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한 후 대한제국의 도시개혁 꿈을 좌절시켰습니다.